나는 현실적인 의문을 던졌다.
“근데요... 같이 일하는 상사나 고객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늦게까지 남아 계신 경우 있잖아요. 그럴 땐 정시 퇴근하면 좀 눈치 보이지 않나요?”
정 이사는 씩 웃더니 대답했다.
“그럴 땐 방법이 있지.”
“오, 뭔데요?”
“먼저 일로 치고 나가면 돼.”
뜻밖의 대답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일로 치고 나간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는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보통은 상사가 일을 시키면 받아서 처리하잖아? 그게 아니라, 네가 먼저 무슨 일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그 일을 주도적으로 리드하라는 거야. 즉, ‘상사가 지시 → 내가 수행’ 구조를, ‘내가 제안 → 상사가 지원’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거지.”
그는 예시를 들어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해보자. 보통은 상사의 업무 지시를 기다리고 그에 맞춰서 네가 업무를 진행하게 되잖아. 그런데 그렇게 하면 늘 받는 사람 입장에 머무르게 돼. 반대로 네가 먼저 필요한 과업을 정리하고, 진행 방법과 일정을 설계해서 보고하면 어떨까? ‘A 관련 업무가 필요할 것 같아 제가 언제까지 준비하고, 검토를 거쳐 상무님 보고까지 연결하는 게 어떨까요?’ 이런 식으로 네가 먼저 제안하는 거지. 그러면 상사 입장에서도 ‘얘가 알아서 다 준비하고 진행하는구나’ 하고 안심하게 돼.”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점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렇게 계속 일하다 보면 은근슬쩍 업무 구도가 바뀌게 된다. 상사가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네가 이끌어가는 구도. 그러면 상사는 네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일일이 챙길 필요가 없어지고, 네가 몇 시에 퇴근하는지도 관심 갖지 않을 걸. 이미 네가 주도적으로 알아서 하고 있으니까.”
그는 마지막으로 정리했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일에 대한 Ownership’이야. 사장처럼 다 하라는 게 아니고, 맡은 일만큼은 누구보다 깊이 알고 리드한다는 태도. 그 Ownership을 가지면, 결국 일에 대한 주도권과 관리권이 네 손으로 넘어오지. 그 순간부터 퇴근 시간은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거야.”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정시 퇴근은 단순히 눈치를 덜 보거나 요령을 부리는 기술이 아니었다. 업무의 흐름을 스스로 리드하고, 책임을 지는 태도에서 나오는 결과였다.
‘일을 치고 나간다’는 건 결국,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할 권리를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