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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냐 정혜승 Dec 31. 2016

<2016년 7~12월> 밥상 일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한게,

최근 내가 차리는 밥상이 대충대충 때우는 수준 같아서 부끄럽다. 집밥연구소장처럼 진짜 훌륭한 지인을 만나서 그런건지ㅎㅎ 그래도 일하면서 이 정도 차려먹으면 됐지, 싶었는데..욕심이 난다. 원래 오랜 꿈은 백화점 문화센터 요리교실 한 번 다녀보는 거였는데.. 지금보다 한 단계 더 근사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만 커지고. 원래 20~30분 초스피드 간단 밥상인데다 사는게 피곤한건지 점점 더 대충대충ㅎ 새 메뉴 도전도 시들하다. 아이들이 각자 바쁜 청소년이 되면서 가족들이 한 상에 마주 앉는 시간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다. 애들도 그렇지만 나부터 몸과 마음이 좀 지친 모양. 쉼표 찍고.. 새해를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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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가을과 겨울> 밥상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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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밥상 일기

<2016년 1~6월> 밥상 일기


1. 밥도 안 했고. 우유가 떨어져 시리얼과 토스트도 마땅찮은 일요일 아침. 대충대충 있는 재료 코브샐러드. 마침 J가 친절하게 가져다 준 유기농 블루베리가 퀄리티를 높였다. 마요네즈+참깨소스. 양이 꽤 많네ㅡㅡ


2. 가지를 소금후추에만 살짝 볶은 맛을 상상하게 만든 트윗.

그래서 볶았다. 하는 김에 버섯과 호박도. 소고기까지 프라이팬 둘 쓰느라 좀 바빴고 더웠다. 가지 훌륭하다ㅎ


3. 인스탄트 태국 쌀국수. 고심하다가 양파 양배추 마늘 고추 볶다가 물붓고 끓여 소스 추가. 고기 토핑 대신 소세지 데쳐서 얹고. 파와 고추 듬뿍 다져 마무리. 반응 굿. 닭은 너무 많이 구웠나 했지만 다 해치움


4. 물 끓이고 파스타 삶는 동안, 가지 버섯 양파 마늘 손질. 오이와 블루베리 샐러드는 예정에 없이 급히 만들고. 야채를 차례로 볶다가 소스 넣고 마무리. 25분쯤 걸렸다. 시판 아라비아따 소스가 생각보다 맵다.


5. 이것저것 바깥 음식만 먹고 다녔지만 이번주 가장 흡족했던건 여름 반찬인 가지와 호박. 한밤중에 해놓고 자뻑 작렬하며 퍼먹었다. 가지는 올리브유에 소금후추만으로 볶았고. 호박은 물 없이 새우젓 뒤적거려 뭉근하게


6. 시댁서 저녁먹고 그동네 슈퍼 갔더니 전복 두 번 할인해 10마리 1.2만원. 살살 손질해 칼집 내어 버터구이. 주말에 놀러간 옆지기 빼고 애들만 신났다. 뭣이 귀헌지 모르고 거부한 덕에 내장10개 몽땅 엄마몫


7. 엊저녁 세일에 돼지고기 뒷다리살 두 근을 5200원에 샀다. 3분의1은 아침 김치찌개에 뭉텅뭉텅. 나머지는 두툼하게 썰어 올리브유와 바질 허브, 후추에 재웠다가 구웠다. 4000원 어치도 안되는 고기로 푸짐


8. 와중에 아침에 만드는 종일 반찬. 어젯밤에 재료 손질 다 해놓고. 두부보다 고기가 많고. 대파와 양파가 많았던 짝퉁 마파두부. 오늘은 물을 너무 많이 잡았다. 밥도 새로 지었는데 아이들 일어나려면 멀었구나


9. 반값 할인으로 세 마리 2200원 청어. 소금 살짝 뿌려 기름 넉넉히 두르고 구웠다. 여름 가지는 미리 볶다가 간장고추장고춧가루매실청들기름 파마늘 양념장으로 마무리. 낮에 끓인 된장찌개와 남은 오리고기와 감자


10. 많이 싸게 팔길래 집었지만 조리된 마트 등갈비는 쏘쏘. 그냥 애들 맛만 보라고 내놨고. 오늘의 야심작은 또 가지. 오늘은 매실청3 간장과 액젓 각1 숟가락. 파마늘로 볶았다. 콩나물과 계란찜까지 나름 건강밥상


11. 엄마가 갖다주신 오리고기. 양파반 고기반 마늘 추가. 무쇠팬에 볶으면 그럴싸. 낮에 끓여놓은 김치찌개에 냉장고 반찬 다 꺼냈다.엄마표 멸치와 가지볶음, 시엄니표 오징어채와 오이소박이. 무한도전 보는 토욜 밥상


12. 어제 일 좀 하긴했지만. 7:30에 왔더니 시엄니가 꼬치불고기와 조기찜 다 해놓으셨고. 고명 절반은 내가 흉내만. 상납한 메이커스 4년근더덕 짱아찌는 시엄니 밑반찬 말석에. 전과 겨자냉채 정도 기여. 아침상ㅎ


13. 살살 녹는 갈비찜은 손주 모두 애정. 연어는 킬러인 내 딸을 위한 고정메뉴. 고구마 튀김은 내 조카용. 나이드신 부모님이 준비한 이 밥상에 내 노동력은 제로. 낮에 시댁 점심을 외식으로 해결한 여동생이 설거지


(동생네 시댁이 올해부터 추석은 외식으로 한다는 소식이 가장 충격. 친정 저녁도 외식으로 해보자고 조르는 중이다. 엄마 아빠 두 분이 온갖 음식을 3일 간 천천히 준비하셨다는데 잘 받아먹긴 해도 맘이 좀 그렇다. 나는 시댁에서만 하루 반 가뜩이나 상태 나쁜 손의 피부가 갈라지도록 일하고, 친정엔 전혀 도움이 안된다.. 며느리로서 낮에 고생하고 왔다고 일 안 시키신다..  그리고 바리바리 싸주신다)


14. 늘 그렇듯 야채 넉넉히. 쇠고기 적당히 차례로 볶는 동안 파스타 면을 삶아 볶음국수. 토핑은 소금후추만, 국수 건져 같이 볶을 땐 굴소스를 썼다. 삶은 계란도 넣고 가쓰오부시도 뿌렸다. 반응 좋았다. 이렇게 평온하게 먹고사는게 가끔 미안할 때가 있다.


15. 토종닭 대파마늘황기에 끓이다가 살은 맛이 빠지기 전에 발라내고. 뼛속 영양이 더 나올까 기대하며 뼈만 뭉근히 오래 끓이면서 찹쌀현미를 함께 넣어 닭죽. 잘게 찢어놓은 살은 소금후추에 따로 데워 죽 위에 토핑처럼 올렸다. 먹기 쉽게 맛내려면 노동이 필요


16. 자연발효빵이 떨이상품이더라. 순간 아침 메뉴가 결정됐다. 김치찌개 하려고 해동 중이던 돼지고기를 가늘게 썰어 파마늘소금후추에 재워놓고. 파프리카 양파도 어젯밤 채썰어 준비. 살짝 토스트해 버터와 마요 바르고 치즈 깔고. 바로 볶아낸 토핑을 얹었다.


17. 돼지고기 애호박 찜인지 찌개인지. 간장 약간 파마늘 양념해뒀고. 새우젓 꺼내려 냉장고 문 열었다가 시엄니표 부추김치가 양념과 국물만 남았길래 그냥 투척. 볶다가 물 붓고 끓이면서 애호박 투척. 마지막 간은 새우젓으로 맞췄다. 덮밥 하기엔 좀 흥건했지만


18. 나름 야심작..까지는 아니고, 대파 넉넉히 굵은 소금과 센 불에 볶다가 살짝 으깨면서 물기 뺀 두부를 같이 볶고. 참기름 둘러 깨소금 뿌려 먹으려 했다. 일욜 아침 간단 반찬. 막판에 고운 소금으로 간맞추려다 뚜껑 헷갈려 쏟았다. 긴급복구 하긴했다만ㅠ


19. ㄱㄱㅊ선배 페북 보고 흉내낸 새우스캠피. 마늘과 고추, 허브, 올리브유에 재우기 전에 껍질 벗기고 내장 빼는게 일. 굽는데 맛들린 사과와 브로콜리. 양을 못 맞춰 혹시나 멸치육수 냈다가 잔치국수 급 추가. 새우 머리는 오븐에 바싹 구웠는데 나만 먹는다


이게 원본. 댓글을 통해 김 선배는 “올리브유는 색이 안 맞아 포도씨유를 썼어요. 거기에 다진마늘, 클러쉬드 레드페퍼, 블랙페퍼, 레몬즙, 소금, 마늘가루를 넣었어요. 오일에 재료들의 향이 배도록 미리 만들어 놓으세요^^” 라고 하셨지만

올리브유를 썼고, 다진마늘 외 나머지 재료는 없어서 그냥 고추만 더 다지고. 레몬즙은 넣는다는걸 깜빡. 심지어 베트남산 냉동새우를 썼다. 어제 12000원짜리 8000원에 할인하길래 시도한거라ㅎ 아마 김선배 작품과 비교하긴 어렵지만. 다행히 딸이 “아니, 새우가 어떻게 이런 맛이 나?”냐며 반색해줬고. 가장 많은 양을 받은 아들도 싹싹 해치웠다.


20. 아빠 없이 애들만 챙기면 되는 저녁. 호기심에 사본 고메 함박. 렌지에 1.5분 데워 2분 팬에 구우면 된다. 4인분이라는데 작아서 애들에게 각 두개씩. 엄마는 맛만 봤다. 흘러내리는 노른자가 필수. 레스토랑 맛. 새우젓으로 맛낸 간단 호박국이 좋구나


21. 무 먼저 끓이면서 소금간. 닭은 다른 냄비에 따로 익혀 불순물 뜬 물은 버리고 닭만 건져 투척. 버섯에 파마늘 듬뿍. 장을 못봐서 딱 있는 재료만 넣고 소금후추로 끝냈는데 맛있다ㅋ 닭은 살만 발라내고 다른 재료는 으깨거나 잘라 닭죽 비슷하게 담날 아침


22. 어쩌다보니 하루 4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한 한 주. 금욜 빡센 세미나 끝나니 기진맥진. 그럼에도 K온니와 벙개로 통의동 갤러리 조우. 인근 카페 '반하다'의 실한 자몽차를 마시가가..H님까지 벙개가 커졌고. 약속한 식당 자리 없어 그냥 울 집으로..


23. 어제 각자 수고했던 가족들의 일요일 아침을 위해 한 밤 토종닭 국물 고으고 쌀 불려 죽 끓이고. 고기는 따로 발라낸 정성. 그러나 딸은 어젯밤 함께 했던 친구들과 조조 영화 본다고 빵조각 챙겨 나가버렸고. 아들은 시간 맞춰 차렸더니 20분 더 잔다고


24. 돼지 뒷다리 덩어리는 저렴. 두툼하게 썰어 잘 재웠다가 구우면 나름 괜찮다. 먹다남은 오리, 닭죽 먹고 남은 닭고기 살, 일주일 지난 팽이버섯, 더 오래된 양파 등도 해치워야 했기에 결국 짬뽕 철판구이가 되버렸다. 그럼에도 맛있다는 애들 덕에 해피엔딩


25. 주말엔 짭쪼름 닭찜을 했다. 그것만으로는 아쉬워 호박새우젓찜도 같이 하려다 호박을 깨끗이 씻어 도마 위에 놓은뒤 변덕. 얇게 채쳐 호박전을 부쳤다. 밀가루 물에 소금간하여 그냥 초간단. 그래도 무쇠팬은 전을 전답게 만드는 마법사. 식탁엔 작업하던 놋북


26. 부부가 외출하는 토요일. 애들 저녁으로 냉장고 오리고기 보니 한 줌 밖에 안남았다. 버섯과 가지 양파, 소세지 한 줄 추가해 그럴싸하게 볶았다. 좀 비싼 자색 양파 간만에 사봤는데 비주얼 보완 효과 굿. 남은 김치찌개에 무도 보며 지들끼리 잘 먹겠거니


27. 열흘 전 평일 휴가. 아파트 장이 섰길래 말린 시레기를 충동구매. 시레기 삶는법 검색해보면 제각각이지만 대충 파악. 어제 드디어 반나절 찬물에 담궜다가 소금 넣고 강불에 팔팔 끓이다 그대로 놨뒀다. (찬물에 박박 헹군뒤) 아침에 멸치 육수 내면서 된장 파마늘 들깨가루. 만족


28. 담백한 아침에 이어 멸치 대파 마늘 다시마로 육수 내어 국수. 다진 파와 김, 가쓰오부시로 간단 토핑. 애들은 바쁜지라 주말 내내 옆지기와 둘이 점심하는데 이틀 연속 라면 먹기엔 쓸데없는 내 자존심. 아침에 해놓은 시레기가 식으니 또 별미라 어울린다.


29. 삼겹살 보쌈이 뒷다리나 앞다리살보다 제값 하는건 분명. 대파 마늘 생강 바닥에 넉넉히 깔고 먹다남은 와인에 된장 커피 후추까지 할건 다했다. 덕분에 풍미도 괜찮다고 주장해본다ㅎ 김장도 안했는데 김장철이라 고기 할인하길래 사놓고 얼렸다가 오늘 드디어.


30. 주말마다 바빠서 밥도 못하고ㅠ 핸드메이드페어에서 산 깻잎잣아몬드페스토 2주 만에 간신히 해치운다. 친정엄마가 며칠 전 애들 구워주고 남은 고기, 오래된 가지, 상한 부분 도려낸 사과까지 재료 처리에 집중. 김치전에 채친 사과 넣었더니 왜 달달하냐고ㅋ


31. 시간 없어 준비에서 조리까지 총 20분 정도 원팬파스타. 재료마다 익는 시간이 다른지라 양배추와 양파 호박은 차례로 뭉개졌다. 처음에 소금, 나중에 굴소스. 고맙게도 아들은 맛있다며 좋아했다. 마침 지인이 보내준 지금 광화문 사진. 부모 마음이란게

..


32. 주말 밥상 차리는게 취미인데. 간신히 볶음밥 해놓고 나간다. 쇠고기 무국도 미리 데워놓는다. 기말고사 기간에 잘 먹이고 싶다만 이쯤 하자. 방금 그 아이들 사진을 봤더니.. 진정이 안된다. 여전히 그렇다. 죄 많은 어른이란걸 잊지 않겠다. 미안하다.


33. 어젯밤 5800원인가 세일한 토종닭. 평소엔 껍질을 다 벗겨 버리는데, 껍질 벗긴 뒤 기름을 좀 더 떼어내고 따로 달궈진 무쇠팬에 투척. 노릇해질 무렵 푹 끓여 발라낸 퍽퍽 부위 고기를 같이 튀기듯 볶았더니 고칼 애피타이저. 나머지는 누룽지백숙으로.


34. 미녀들 카톡방에선 옷 얘기가 한창이길래 한 잔 하고 들어오는 길에 눈요기만. 귀가해보니 낼 반찬이 없더라. 부랴부랴 20분 만에 이 수준. 멋진 집밥까진 못하겠고 대충 하루 넘기면 됐다. 멋진 미녀들 틈에서 밥냄새 집착하는게 문득 덜 뿌듯한 날이다.


35. 나름 큰맘 먹고 지른 홀리데이햄셋. 햄은 오븐에 통구이. 스프는 좀 뻑뻑하고 적어보여 버터에 감자 밀가루 볶다가 우유 끓이며 합쳤다. 원본처럼 정성 더 들였으면 좋았겠지만 대충 브런치. 엄마놀이 몰입했군 반응


36. 크리스마스 이브 점심. 외식 하네마네 하다가 옆지기가 자신이 책임지겠노라 큰소리. 돼지고기, 햄에 고추장 넣은 김치전골에 라면사리까지. 만족도가 높자 "아빠 김치찌개집 차려도 잘하겠지?" 뻐겼고. 호응해주던 딸은 "너무 나가셨어요"라고 차분하게 제동.


37. 냉장고에 야채가 별로 없어 파스타에 양파 햄, 그리고 사과를 길게 썰었다. 양배추에 단호박슾, 닭날개 오븐구이, 얼린 야쿠르트. 나름 성탄휴일이라 후추 허브에 재운 스테끼도. 브로컬리 사과 버섯도 구웠다. 담엔 양파는 빼야겠다. 사과는 괜찮은 식재료.


38. 휴가에 혼밥 점심. 양배추 넉넉히 넣고 고기는 약간 넣는다는게 한 두 점 더 투척. 소금 약간에 통후추 팍팍. 올해가 가기 전에 읽고 싶었던 올리버 색스 옵바의 자서전. 이 정도면 정말 호사로운 한 낮. 한 해 수고많았다고 내게 선물하는 쉼표. 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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