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40대 중반. 다시 리셋
워킹맘의 또 다른 직업은 며느리이죠~
이번 긴 연휴에 여행간 집도 많던데 저희 시댁은 어김없이 제사를 지냈어요.
저희 시부모님은 첫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맏이 역할을 자처하시며 명절마다 상다리 부러지게 제사음식을 만드시고 힘드시다며 한 숨을 쉬십니다.
결혼 초에는 꼭 하루 전날 점심때 와서 전부치는 미션을 주셨었는데, 전을 다 부치고 나면 온 몸에서 기름냄새가 진동을 했어요.
결혼 3-4년차쯤엔 많은 시댁 어르신들이 아침에 차례 지내고 아침상 드시고 나온 그릇들을 설겆이 하느라 허리가 끊어질듯 했어요. 저희 애가 아장아장 엄마다리에 감겨 안아달라고 떼써도 "아빠랑 할아버지랑 가서 놀아"라고 뿌리치고 며느리 본분을 지키느라 애썼죠.
애가 젖먹이일때도 꼭 하루 전날 가서 자는 걸 원하셔서 기저귀에 분유에 바리바리 싸서 가서 애 아빠가 쓰던 방에 더블침대에서 저희가 자고 떨어질까봐 밑에 바닥에 이불을 깔고 아이를 재웠더니 어머님이 깜빡 보일러를 안트셔서 애만 하룻밤새 감기가 된통 걸려 며칠 열이 안 가라앉아 집에와서 연휴내내 간호하느라 힘든적도 있었구요.
중간에 점점 저의 불만이 터져나오면서 남편이 살짝 아버님 어머님께 "요즘 제사 안지내고 절이나 성당에 모시는 집도 많더라구요. 두 분도 명절에 편안하게 지내시고 여행도 다니고 그럼 어떠세요?"라고 돌려 말했는데 답정너 처럼 "무슨 소리냐. 제사는 지내야지."라는 답이 돌아왔죠.
본인들이 명절 제사를 핑계로 일년에 두번 형제들 얼굴보고 자식들 얼굴보고 하시려는 건 알겠는데, 자율성은 빠진채 강제소환을 매번 하시고 무언의 역할 할당이 이루어지니...며느리로서는 일을 안할 수 없는 형태라 불만이 쌓여갔던거였죠.
그러다 연재 초기에 썼던 김장 사건, 인테리어 사건 등으로 저는 감정적으로 너무 신뢰를 잃고 실망하게 되면서 '살갑고 순종적인 며느리'에서 '어렵고 똑똑한 며느리' 로 저도 모르게 태도 변화가 일어났던거 같아요.
설겆이가 수북히 쌓이기 시작하면 제가 먼저 고무장갑끼고 시작했다면, 그런 감정 변화 이후엔 남자들 밥먹고 과일 먹는 사이에 그냥 앉아서 끝까지 과일을 먹었어요.
그렇게 밍기적 일어나 부엌에 가보면 작은어머니가 설겆이를 하고 계시거나, 본인 시댁은 제사 안지내고 여행가거나 외식하는 분위기라 며느리의 명절 힘듦을 모르는 아가씨도 놀러와서 편히 앉아있다가 언니가 어느순간 곁을 안주니 어기적어기적 엄마가 시키는 일을 거들어 주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규칙대로' 안하면 큰 일날 것 같은 '관습의 힘'을 실천하고 있는 시댁에서 '페미니즘(?)의 정의, 평등의 정의, 여성의 사회진출 및 변화된 역할 변화'에 대한 약간의 경험을 한 저로서는
매번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내적갈등'을 간직한 채 시댁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번 명절에도 하루 전에 가려고 집에서 출발하려는데 친한 선배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장례식장 들렸다 혼자 저녁에 시댁으로 갈테니 남편에게 애 데리고 먼저 가라고 보냈어요. 어머님 규칙대로라면 하루전날 12시쯤엔 와서 일부 일을 거들고 저녁에 같이 근처 드라이브 하면서 제가 사드리는 빵과 커피 드시며 리프레쉬 하셨어야 하는데 저는 모든 일이 끝난 저녁8시에 시댁에 도착했죠.
그냥 저의 자격지심인지 모르겠는데 아가씨는 제 눈도 안 마주치더라고요..인사도 안하고.
추석 당일 아침 새벽 6시반에 일어나 상 피고 음식을 나르는데, 차례가 다 끝나고 설겆이가 한 가득 나왔을때 마다하지 않았어요. 양심상 이번 명절에는 내가 한게 없으니 설겆이라도 빡쎄게 하고 가야지 라는 맘이었죠.
그제서야 아가씨가 어제 언니줄라고 얼굴 크림 사왔는데 이제 준다며 내밀더군요... 아마 그 전날은 나타나지 않는 제가 얄밉다가 당일날 빡쎄게 설겆이하는 저를 보니 줘도 되겠네..라고 생각한 건 저만의 엇나간 생각이겠죠? ㅎㅎ
명절도 리셋이 필요하긴 합니다.
누가만든 명절 규칙인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