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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는 ‘서울’을 걷고 생각하고 씁니다

by 마포걷달

표지사진 |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기록으로 ‘서울’을 선물합니다


작가가 되려고 걷기를 시작한 것은 아닌데,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작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걸었던 흔적을 남겼을 뿐인데, 그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잊고 있었던 기억을 끄집어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댓글에 제가 오히려 송구스러웠습니다.


2023년 6월부터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걸었고, 얼마부터는 미친 듯이 걸었습니다. 그렇게 365일을 3천5백 킬로도 넘게 걸었고, 스마트워치에 기록하지 못한 1천 개의 숫자는 제 몸에 고스란히 경험치로 남아 있습니다. 미친 듯이 걷다 보니, 걷는 게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건강과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장소를 찾아가고, 사물을 보고, 그것을 만지는 일은 굳어있는 제 일상의 기름칠과도 같았습니다.

콧대 높은 주인집도,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객이 되었다 - 용산구 이촌동


지난 1년 동안 쉼 없이 걸었고, 이후 6개월은 가까운 곳으로 자주 걸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거리가 아닌, 짧아도 더욱 섬세하게 걷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곁눈질만 해도 제 동네에서 가까운 곳도 모르는 곳이 많더군요. 그리고 눈부신 곳은 차갑고, 낡은 곳은 따스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화려하게만 보이는 서울도, 조금만 비켜 돌아가면 하염없이 낡고 오래된 흔적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을 보듬어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저만의 특기가 되어갑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기억과 추억을 어깨에 들쳐 매어 오면, 삶의 현장에서 오는 애환의 무게는 저에게도 깊은 성찰이 됩니다.

애환의 도시, 서울을 걷다 - 종로구 창신동


서울의 동네가 426개나 됩니다. 그 많은 동네를 다 걷는 것은 물론, 외우기도 힘듭니다. 무심코 지나친 거리가 어떤 동네였는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동네가 있었는지도 싶을, 그런 이름을 가진 곳을 찾게 되면 마치 보물을 캐낸 느낌입니다.


옛 건물들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집들이 형성됩니다. 때로는 큰 길이 없어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도 합니다. 어떤 집은 이미 헐려서 자리만 남아있고, 또 어느 곳은 사람들이 다 떠난 자리에 고양이 가족들만 남아있기도 합니다. 제 인기척에 놀라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면, 저들의 평온한 삶이 그리 크지는 않을 텐데 괜히 방해를 했나 싶기도 합니다.

“당신은 누구신데 우리 구역을 침입하셨다능?” - 동작구 노량진동


누구나 다 알지만, 누구나 제대로 모르는 서울 구석구석을 제 발로 걷습니다. 잊힌 또는 잊혀가고 사라져 가는 거리를 담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살아온 곳이라면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또는 내가 사라지기 전에 서로의 이야기로 남기고 싶습니다.


모든 서울을 담지는 못하겠지만, 사라지는 서울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빠르면 지나치는 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제 발로. 앞으로 1년 동안, 나는 서울을 걷고 생각하고 씁니다.


- 마포걷달, 정선원 작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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