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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Jul 05. 2021

동물농장 2021(5/10)

<제5화> 대머리 독수리-까마귀 실버드

오직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었던 옵핸드는 투자를 받아 회사를 키우고 싶은 욕망이 날로 커져갔다. 이 허왕된 욕심은 냄새가 심해서 똥파리들이 꼬여들기 시작했는데, 대머리 독수리 실버드가 그중 하나였다.  


대머리 독수리 실버드는 날개를  펴면 2미터는 되는  덩치의 소유자로 머리숱은 없지만, 부모를   아메리까노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꼬레아에 돌아왔고, 외국어 특기생으로 꼬레아 훈련소에 들어갔다.


훈련소를 나와서는 빈둥 대다, 앗차 싶어 경영 컨설팅을 한다는 1인 회사를 차렸다. 그 이후 대표 행세를 하고 다니며 지자체에서 떨어지는 콩고물들을 받아먹으며 살았는데, 외국어 특기생은 특히 지방관료들에게 잘 먹혔다.


월요일 아침, 여느 때와 같이 농장 아침 조회 시간에 옵핸드가 꿀꿀거렸다.


"우리 농장 가치가 1조가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유니콘이죠. 투자에도 엘리트 코스가 있고, 우리가 딱 그 길을 따라가고 있으니까요. 저는 뭐 욕심도 없습니다. 애도 없어요. 자기 재산을 지 새끼한테 물려주려고 온갖 짓을 다 하는 그런 동물들 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단 말입니다.


꼬레아는 너무 작아요. 우리는 해외에서부터 시작할 겁니다. 이 만한 규모로 씨드 투자를 이끌어 낸 농장은 드물죠. 꼬레아에 있는 투자사들은 배포가 작아서 그렇게 못합니다. 그게 우리가 지금까지 투자를 거절당한 이유입니다. 안 되면 말라고 해요. 우리도 돈 있습니다. 몇 년 투자 안 받고 버틸 수 있어요. 유노왈암생?


왜냐고요? 우리한테는 실버드님이 계시니까요. 여러분 실버드 독수리님 아시죠? 그분이 투자업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분이신데, 우리 쪽에 열 장 넣기로 하셨습니다. 자그마치 10장이요. 이분 안목이 대단하시죠."


실버드가 유명한지 아는 동물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가 D동 헛간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놈의 돈은 아직도 들어오질 않았나 보네. 실버드인가 뭔가가 돈 넣는다는 얘기는 6개월 전부터 하지 않았어요?


"근데 그게 처음엔 세 장이었던 것 같은데, 계속 늘어나기는 하네요. 거의 매달 한 장씩 늘어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 한 장이 원 딸라는 아니겠죠? 큭큭큭"


인딴들과 신입 동물들이 속닥거렸다. 옵핸드는 자신이 6개월째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다른 동물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의 세계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보다 똑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옵핸드의 전화기가 울렸다. 수신자의 이름을 본 옵핸드가 황급히 조회를 끝내고 헛간 안 쪽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예, 예, 실버드님, 잠시만요. 좀 적겠습니다. 그러니까 중개 플랫폼, 구독형, 쌋스, 쌌으요? 뭘 쌌단 말입니까? 아 예. 그 싸스(SaaS, Software as a Service) 요. 이런 키워드란 말씀 이시죠. 이게 1조 짜리란 말씀 이시죠?


아, 아메리까노 투자자 가요? 와 이건 대박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역시 실버드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당장 자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매출 20배로 늘려주는 싸스입니다. 우리 플랫폼을 안 쓰면 20분의 1이란 얘기죠. 예 예 알겠습니다. 제 머릿속에 다 있죠. 제가 자료를 좀 만들어 보겠습니다."


옵핸드가 급하게 기린 마릴린을 찾았다.


"말린리씨, 리슨 케어플리. 지금 우리가 자료를 하나 만들어야 합니다. 저한테 아이디어가 다 있어요. 매출 20배 만드는 쌋쓰입니다. 자, 이제 기획자 마릴린씨가 자료를 1시까지 만들어 오세요. 서두르세요. 지금 투자자들이 이것만 받으면 돈을 넣겠다고 하니까요. 유노왈아민?”


기린 마릴린은 ‘이건 무슨 돼지 채식하는 소리인가. 아이디어는 너한테 있는데, 내가 어떻게 자료를 만들어 오지?’라고 생각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저, 수장님께서 시간이 되신다면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대단한 실수였다. 이때 옵핸드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점점 더 혼돈의 카오스 속으로 빠져든 마릴린은 10여 년을 준비하여 기필코 탈출해 나왔던 동물원으로 제 발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 시각 대머리 독수리 실버드의 성남 죽전동 둥지에서는,


“와.. 이 짓도 날이 더워지니 못해먹겠네. 꼬레아의 여름은 습해서 살 수가 없구먼. 얼른 여기서 해 먹고 지상낙원 칼리훠니아로 떠야지, 이거 힘들어서 원... 까악까악.”


실버드는 몸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졌다. 지친 모습으로  둥지로 들어서던 그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 하자, 가랑이 옆에 깊이 숨겨져 있던 지퍼를 내리고 자기 키 보다 더 큰 털 옷을 훌러덩 벗어던졌다. 이윽고 땀에 흠뻑 젖은 그의 새까만 털과 가냘픈 상체가 드러났고, 독수리의 옷을 벗은 대머리 까마귀 실버드가 마침내 자유의 들숨날숨을 만끽했다.


to be continued....

 



Photo by Alvaro Postig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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