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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Jul 11. 2021

동물농장 2021(9/10)

<제9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D동 헛간에서 일하는 동물들은 업무효율을 위해 메신저를 썼다. 동물 지능을 이용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수였고, 기술에 떠드는 것에 능한 옵핸드가 타이핑에도 능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옵핸드는 하루에도 수 차례씩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설파하기 위해 애썼다.


"이 기술은 칼리훠니아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일 년에 지구 한 바퀴를 돌면서, 쓰는 사람에게 20배의 매출을 안겨 주며, 이것을 쓰지 않으면 20분의 1의 매출만을 주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쓸데없는 메시지들을 잔뜩 보낸 뒤 헛간 동물들로부터 수많은 라이크를 받은 옵핸드는 가슴을 가득 채우는 만족감에 몸을 떨었다. 내 논리력이 나도 놀랍다. 그러다 문득 다른 동물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자, 마스터 계정이 어디 있더라. 다들 뭘 하고 있는지 한번 볼까.


이 마스터 계정을 쓰면, 메신저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대화를 감시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합법적인 것이었고, 우리가 읽지 않고 대충 동의를 눌러 넘겼던 그 사용 약관에 자세히 명시되어 있었다.


생각 없이 대화 내용들을 읽기 시작했던 옵핸드의 표정이 굳어졌다. 3시간, 5시간, 9시간이 흘러도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심각한 표정으로 동물들의 대화 내용들을 읽어 보던 옵핸드가 쌍욕을 하며 마우스, 키보드, 머그컵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던져 부숴버리고 있었다.  


"이런 배은망덕한 어린 노무 새끼, 조태기 이 새끼, 죽여 버릴 거야."


옵핸드만 없는 방에서 조태기가 왕 노릇을 했다. 조태기는 사사건건 옵핸드 수장에 대한 험담과 조롱을 늘어놨고, 거기에 수많은 옵핸드 밈들이 등장했다. 이 메시지들은 동물들 사이에서 수 없이 퍼져나가 옆집 농장들에서도 모르는 동물들이 없었다.


#옵핸드 이색끼 오늘도 칼퇴하네 # 오늘도 개소리 중 #이런 게 오너 리스크 #기술은 떠들기만 하고 할 줄 아는 건 없는 색기#멍청한 놈#녹음하려다 걸려서 개망신 #조태가 진정한 리더


조롱과 모욕으로 가득 찬 채팅창을 보며, 옵핸드는 피가 거꾸로 솟았다.  


그 와중에 어떤 동물들은 1분도 쉬지 않고, 출근부터 퇴근까지 메신저로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누가 무슨 옷을 입었고, 친구의 조카의 팔촌이 땅을 사서 배 아픈 얘기까지 별의별 얘기들이 오고 갔다.


옵핸드 영감은 비참했다. 평소 성격대로 빠르게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를 거친 그는, 모든 동물들을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이 농장의 일은 내가 다 해왔고, 나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때가 되기 전 까지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복수하리라. 농장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진 그는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름을 맞아 여러분 전원에게 내일부터 5일간의 리프레시 휴가를 드립니다>


#또 뭐냐 갑자기 웬 휴가#아 씨 왜 지금 주고 난리야 계획이 다 있는데#차라리 돈을 주지#지금 회사일도 많은데 지가 일 안 한다고 다 일 없는 줄 아나 보네 이색기#


옵핸드가 나가자 동물들의 타이핑 소리가 D동 헛간 안에서 메아리쳤다. 그때 조태기가 옵핸드 영감을 따라 나오며 물었다.


"옵핸드 수장님, 그럼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직 마무리해야 될 것들이 있는데요. 동물들을 다 쉬게 하면, 뭐... 할 수 없죠 뭐.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죠. 조태기 부수장 님.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푹 쉬십시오"


옵핸드는 그 길로 변호사를 만나러 갔다. 조태기를 부수장으로 만들며 주었던 농장 지분을 되찾아 오고 그를 고소할 길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실버드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칼리훠니아로 회사를 옮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군”




Photo by Richard Boy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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