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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리 Jul 11. 2021

동물농장 2021(10/10)

<최종화>  어쩌다 우리는

"네, 안녕하십니까. 옵핸드님, 잠시만요."


대머리 독수리-까마귀 실버드가 전화를 받으며 함께 있던 조태기와 죰센긴에게 손으로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내고, 이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 폰을 켰다.


조태기는 이제 자신만의 헛간을 가지고 싶었다. 옵핸드가 매일 불러서 하는 헛소리도, 그가 저 혼자만 배 부르게 하는 헛간 운영 방식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옵핸드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조태기의 이런 생각을 진작에 읽은 실버드가 그 생각에 불을 지폈다. 실버드는 사소한 갈등과 감정 다툼을 증폭시켜 동물 관계의 균열을 만드는데 능했다. 특히나 이렇게 둘 사이에 소통이 없는 경우는 더 쉬웠다.  


이제 조태기는 옵핸드를 단 한순간도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 있었다.


"실버드님, 아메리까노로 회사를 이전하는 시점을 더 당기고 싶습니다. 저희가 낸 쌋스 제안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투자자님들이 좋아하시던가요?, 아 그래요? 그거 좋은 소식입니다. 일단은 이 헛간을 좀 정리한 후에  핵심 멤버 몇몇만 데리고 이주할 예정입니다. 메잌스 센스?


지금 변호사를 만나고 오는 길인데, 제가 100% 지분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되었고요. 조태기 이 새끼는 이제 끝났습니다. 다른 동물들 한테 어찌나 제 욕을 하고 있던지 그걸 제가 모두 증거로 가지고 있습니다. 발 네 개 달린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개미핥기를 거둬드린 제 잘못입니다. 더 이상 어느 동물도 믿을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독수리 실버드님은 예외로 하고 말입니다.


독수리-까마귀 실버드가 어깨를 으쓱했다. 듣고 있던 조태기가 벌개진 얼굴로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 옵핸드가 쉼 없이 말을 이어갔다.


"제가 마스터 계정으로 다 봤습니다. 모두 캡처해놨어요. 어차피 이 농장이 굴러갔던 것도 모두 제 아이디어 때문이었고, 그 정도 친구들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월급 조금 더 올려주면 뽑을 사람 많더군요. 제 캐스트 후배들 중에도 뛰어난 사람들이 많고요. 일단 제가 알아서 처리 해 놓을 테니 실버드님은 아메리까노 이전 쪽을 확실히 해 주십쇼."


마스터 계정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조태기는 당황했다. 메신저를 열어 지금까지 해 왔던 대화들을 다시 읽어보니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밀려오기도 했지만, 이미 터진 일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조태기는 더 화가 났다.  


"어쩐지 웬 놈의 휴가를 5일 씩이나 갑자기 주더니."


어떻게 일이 이렇게 꼬였을까 떠 올려 보려고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헛간 창업 후 1년이 넘게 월급이 나오지 않았던 보릿고개 시절도 있었다. 버티기 힘이 들었지만 이 자맥질을 멈추면 가라앉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함께 견디며 회사를 키우기 위해 잠도 안 자고 프로젝트에 매달렸다. D동 헛간으로 이주해 왔을 때는 벅찬 가슴으로 옵핸드와 함께 진탕 술을 마시고 새끼 동물처럼 울기도 했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지?


 눈치 빠른 실버드가 더 잘 된 일이라며 무릎을 쳤다.


"정말 타이밍이 좋습니다. 어차피 옵핸드 수장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일단 아메리까노로 데려가서 시간을 좀 벌어 드릴 테니, 좀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죠. 주요 클라이언트에게도 작업이 들어가야 할 것이고요. 어차피 모든 일은 조태기 수장님께서 실무를 해 오셨고, 모든 클라이언트들도 그걸 잘 알고 있지요. 이제 시작입니다. 조태기 수장님. 수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조태기. 그는 실버드가 까마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버드가 옵핸드의 신임을 얻기 시작하던 시절, 실버드는 옵핸드에게 조태기가 조직을 어지럽힐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내보내는 것이 좋다고 훈수를 뒀고, 옵핸드는 그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조태기에게 전했었다. 조태기를 더 자극해서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얕은수였지만, 조태기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조태기는 실버드의 뒷조사를 하면서, 실버드가 잠재적인 범죄 행위로 투자 협회에서 쫓겨난 것을 알게 되었고 옵핸드에게 경고한 적이 있었다. 옵핸드는 사업이라는 냉혹한 세계에서 성공한 동물 중 깨끗한 동물이 얼마나 되겠냐며 실버드의 편을 들었다. 깨끗한 자는 나와서 그에게 돌을 던지라고 하십쇼. 그래 봤자 겨우 횡령이나 배임인데, 그런 것들은 사소한 오해나 실수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있으니 그것은 어떻게 믿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그것으로 동업자 관계는 끝났다. 스스로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자기 확신이 위태로웠던 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개미 핥기 조태기는 죰센긴, 그리고 몇몇 인딴들과 함께 회사를 정리해서 옆 헛간으로 이주했다.

수퇘지 옵핸드 영감은 실버드의 소개로 아메리까노로 가서 투자자들을 만나 "쓰면 20배 매출/안 쓰면 20분의 1의 매출"의 피칭을 진행했으나, 투자자들은 옵핸드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전혀. 네버.

대머리 독수리 실버드는 사기 칠 대상을 물색하며 땀띠 치료를 위해 죽전동 피부과에 다니고 있다.

어린 암말 네무브는 옵핸드와 이혼하여 재산분할을 받고, 중고명품 사업을 시작했다.

나무늘보 태평광은 조태기의 회사에 조인해 18시간 잠을 잤다.

이직했던 너구리 문스톤 영감은 새끼들을 훈련소에 보기 전까지는 계속 헛간에 남아 있을 생각이다.

숯 곰 빅아이언은 더 배우기 위해서 고등 훈련소에 지원했고, 문스톤 영감과는 계속 연락하고 있다.

그린 농장에서 촤이녁이는 승승장구했다. 나만 죽지 않아. 촤촤촤.  

팡팡배달소 하이에나 로트왓은 성공적으로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딱따구리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 차므리는 팀장이 되었다.  

동물원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기린 마릴린의 소식은 아무도 다시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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