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투자한 지 3개월차다. 이번 달부터는 배당도 나온다. 40만원에 불과한 소액투자라 아직 배당금은 1,259원에 불과하다. 수익도 8,700원에 불과하다. 만약 내가 인덱스 펀드에 관심을 가졌던 여름에 투자를 시작했다면 같은 금액을 넣었더라도 15퍼센트는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인덱스 펀드를 만든 존 보글의 책을 읽고 워런 버핏의 “자산의 90퍼센트는 인덱스 펀드에 맡기라”는 말들로 위로를 하고 있다. 어차피 그만한 수익을 가지고 있더라도 바로 실현을 하지는 않았을 테니 큰 의미는 없다.
렇지만 마음속 번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주가가 크게 변동하지 않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섞여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통장 잔고가 조금씩 늘어나는 걸 보면 작은 희열이 느껴진다. 처음으로 알바를 하면서 알음알음 모으니 점점 잔고의 금액이 늘어간다. 하지만 SNS에서 그리고 엄마의 잔소리 속에서 들려오는 또래들의 소식을 마주하면 이내 초라해진다. 이런 쥐꼬리만한 금액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우스워진다.
그런 심정을 잠시 환기시키고자, 평소 쉽게 가지 못하던 카페에 들렀다. 그곳은 내가 좋아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나름 사장님들과 관계가 있어 가끔씩 간단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예전에 브런치에 그곳에 대한 글을 올린 적도 있었다.
https://brunch.co.kr/@markvii/6
그렇게 잠시 사장님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들은 첫 문장.
“내년 계획은 있으세요?”
별거 아닌, 흔히 하는 상투적인 질문이다. “내일 뭐해?” 정도의 가벼운 물음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획’이라는 단어 하나가 추가되자, 마치 내게 어떤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또다시 공황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공황 속에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정말 눈앞까지 다가왔다는 사실을. 아니, 사실은 이미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결국 나는 뚜렷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무엇부터 말해야 할지조차 막막해졌다. 그 순간, 공황 상태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고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간단한 질문이었을 텐데,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곧이어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고, 카페는 조금 바빠졌다. 로스팅기도 제작하시는 분이라 그에 관한 대화도 나누고 있으시기도 했다. 어느정도 잘 되고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지만 더 긴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 상황이 나를 도와준 것 같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누군가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브런치를 시작하고도 계속 고민만 하고 있다. 어떤 방향성을 정해야 할지 선명하지 않다. 알바도 구하지 못한 채 여전히 넉넉함과는 거리가 먼 처지다.
늦은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방향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영어 회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잇따른 영어 공부 실패는 내 자신감을 갉아먹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인가 더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몇 달 전, 외국인과 번역 앱을 통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아직은 외국어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AI와의 영어 회화 시대가 열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번역 앱의 퀄리티는 날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어 공부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다. 게으른 마음 한편으론, AI가 점점 더 발전해 언젠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한편, 커피에 대한 고민도 계속된다. ‘커피를 판다’는 일이 과연 맞는 걸까? 예전 글을 썼을 때 커피 가격은 300달러에서 340달러로 더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이미 300달러에서 27년 만의 최고치라고 말했지만, 그 수치는 금세 또 올라버렸다. 특히 저가 커피의 가격 상승은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내년 중순부터는 가격 변동이 한층 더 두드러질 것 같아 보인다.게다가 우유나 기타 재료비, 물가 인상은 덤이다. 문을 닫는 상점들이 주변에서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이 시기에 발을 들이는게 맞나
https://biz.heraldcorp.com/article/10013873
앞선 해프닝과 고민을 하며 이 소재에 대한 내용을 다듬던 중, 저녁에 먹기 전 엄마와 산책을 하면서 라떼를 사갔다. 엄마는 무조건 라떼파라서 따로 근처 카페에서 구매해야 한다. 근처에 있는 매머드에서 2,200원에 라떼 한 잔을 샀다.
그렇게 라떼를 사고 나서 엄마가 한마디 던졌다.
“커피 값이 너무 비싸.”
낮에 14,000원짜리 커피를 마셨던 나는 그 말에 묘한 충격을 받았다. 이어서, 지난 가을 단기 알바를 하며 친척과 나눴던 커피 이야기가 떠올랐다. 광화문 오피스 상권에서 살아가며 근무했던 분이다.
“직장인은 2천 원이 넘어가면 커피 안 사 마셔.”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가볍게 넘겼지만, 지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기후 변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 탓에 예전의 커피 가격으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직감이 강하다.
커피에 관심이 깊어질수록 느끼는 점이 있다. 커피 맛을 따지고 원두의 산지나 고도, 재배 방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디테일에 신경 쓰는 이들은 대부분 커피 업계 종사자들이다. 항상 커피 세미나 등을 다녀보면 어디선가 본 얼굴들만 만나게 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커피 관련 포스팅들을 보면, 커피 원두와 그 본질적인 이야기를 다루기보다는 예쁜 음료, 감각적인 공간, 그리고 음료와 어우러진 세련된 디자인이 더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쪽으로는 승산이 없음을 잘 안다. 미적 감각은 애초에 없었다. 꾸밈을 잘했다한 최소한 키스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멋있게 옷 입는 사람을 보면 경탄을 하지만, 그뿐이었다.
대신 커피의 맛을 보는 측면에서는 나름대로의 자신감—아니, 적어도 재능이 못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커핑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나 다양한 원두를 접하며 얻은 경험들이 쌓여 있다. 그럼에도 커피를 만들고 내리는 일을 할 방법이 요원하니 답답할 뿐이다.
배워야 할까, 아니면 말아야 할까.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커피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없는 것보다는 가능성을 높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불확실성에 투자하는 것은 마치 도박처럼 느껴졌다.
지금보다 더 많은 꾸준한 수입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잘 알지만, 내가 과연 누군가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지 또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지 막막하다. 커피와 글쓰기 말고는 특별히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마저도 진로로 삼기에는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보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갈 길이 더 흐릿해지는 것만 같다."
그런 고민 속에서 꾸준히 프랜차이즈 카페에 지원서를 넣어봤지만, 번번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개인 카페에 대해 알아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최대한 직원을 쓰지 않거나, 인맥을 통해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발목이 더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이 모든 선택이 결국 나의 소심함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지만, 그 소심함이 쉽게 바뀌지 않는 나 자신을 보며 또 한 번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