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50만원. 하지만 따로 지출이 없다 보니 통장 잔고가 조금씩 올라가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투자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지만, 아직은 방향을 정하지 못해 망설이는 중이다. 그래도 이제는 내 돈으로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아직 받는 것이 더 많지만 말이다.
어머니는 가끔 학교에서 1-2일짜리 단기 알바를 하신다. 처음에는 지인의 소개로 시작하셨는데, 이제는 신뢰를 쌓아 학교에서 직접 연락이 온다고 한다. 오늘도 아침 일찍 아빠를 데려다주시고, 수영장에서 씻고 바로 출근하셨다.
엄마가 커피와 떡을 사달라고 하셨다. 평소 떡을 즐기시는 모습을 못 봐서 의아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사 들고 갔다. 떡을 처음 사봐서 가격은 잘 몰랐는데, 한 팩에 3천원이었다.
지난주부터 원하셨던 호빵도 함께 샀다. GS25에서 주말마다 하는 GSpay 호빵 1+1 행사를 놓치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저녁에 가서 품절된 바람에 허탕을 쳤었는데, 이번에는 성공이다. 2봉지에 4,900원에 사갔다.
저녁에는 KFC 치킨올데이 행사를 이용해 치킨도 사드렸다. 한 조각을 사면 한 조각을 더 주는 이벤트였다. 핫크리스피치킨 3+3조각을 사갔다. 양이 많다 보니 나도 나눠먹기는 했지만 2조각은 엄마도 먹었다.
비록 전부 합쳐도 15,000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지만, 어머니에게 내가 베풀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사실 용돈만 받을 때에도 엄마가 사달라고 한 적은 많았다. 그렇지만 적게 받는 용돈으로 엄마에게 무언가 사드리면 항상 빠듯하고 여유가 없었는데, 지금은 무언가 사드려도 내가 번 돈이니 좀 더 떳떳하고 사드려도 여유가 있다.
이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어머니, 외할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외할머니 댁 근처의 늘 가던 카페에 들렀다. 평소에는 항상 외할머니가 계산하셨다. 용돈도 넉넉히 주시고, 가족들의 식사비와 여행 경비도 대부분 외할머니가 부담하시곤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가시고, 외할머니가 자리에 앉으시는 사이 조용히 계산을 했다. 외할머니의 주문은 늘 같다. 고소한 원두에 바닐라 시럽을 살짝 넣은 바닐라 라떼. 바쁜 스타필드 매장이지만, 바리스타들도 외할머니의 단골 메뉴를 기억한다.
두 잔의 커피 값 12,500원. 요즘같이 저가 커피 체인점이 성행하는 시대에는 조금 비싸게 느껴질 수도 있는 가격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내가 대접하고 싶었다.
"커피 나왔어요. 오늘은 제가 낼게요."
"아이고, 이런 걸 네가 왜 결제하니? 내가 내야지."
"이번엔 제가 하고 싶어서요. 항상 저한테 용돈 주시잖아요."
"응, 참 기특하네. 이렇게 컸네."
할머니는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나는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평소 같았으면 커피값을 내시면서도 용돈까지 더 얹어 주셨을 텐데, 이번엔 그러지 않으셨다. 그냥 내가 낸 커피를 그대로 받아주셨다. 아마 내 작은 성의를 그대로 존중해 주고 싶으셨던 거겠지. 커피잔을 내려놓으시는 그 손길이 어딘가 다르게 느껴졌다. 조금은 쓸쓸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제 자립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신 것 같았다. 할머니의 잔잔한 미소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작은 성취를 실감했다.
앞으로는 주변인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드리고 싶다. 아빠가 더 고생하지 않을 만큼 보탬이 될 만한 직장을 구하고 돈을 꾸준히 벌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평소 씀씀이와 빚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그래도 조금씩 계획을 세워가고 있다. 아빠의 건강을 쉽게 체크할 수 있도록 애플워치를 하나 선물해드리고 싶다. 아빠가 아이폰을 사용하시니 가능한 일이고, 다른 워치들보다 정확도가 높다고 하니 무리가 되더라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족들을 위한 TV도 사고 싶다.
하고 싶은 게 많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호빵 하나,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한 지금, 언제쯤 더 큰 선물들을 준비할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까지 작은 성취를 하나씩 해나가며, 조금씩 계획을 세워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