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레, 오래된 여행을 회상하며....
머리끝까지 숨이 차오른다. 숨을 내쉴 때마다 나의 뇌 용량을 짐작해본다. 이렇게 협소한가 생각하다가도 다시 쪼그라들다가 깊어지기를 반복한다. 숨을 내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라다크행은 내 사고가 이뤄지는 공장의 실체를, 호흡을 통해 어루만져 보는 귀한 체험이었다.
히말라야 트래킹보다 라다크로 가는 여정이 내겐 더 험난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유지의 '오래된 미래'를 통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라다크. 라다크 왕국은 1947년 카슈미르 지역이 인도로 편입될 때 라다크도 인도 땅이 되었다. 이곳은 인도 영토지만, 사실 인도와 다르다. 물론 지금은 많이 희석됐지만, 라다크는 라다크다.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지만, 오키나와는 여전히 오키나와이다, 이 역시 많이 희석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을 가야 했다.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영역이 될 수밖에 없는 땅이 라다크가 아닐까. 무더운 8월에 인도행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라다크 때문이다. 6월 중순부터 9월까지 라다크로 가는 육로가 열린다. 10월 초 첫눈이 내리면, 다음 해 봄까지 육로는 막힌다. 물론 비행기로는 이동 가능하다. 춥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반해, 여름은 덥지만 건조해서 여행하기 최적의 계절이다.
(그런데 최근 글들을 찾아보니 한 겨울인 1, 2월이 성수기라고 한다. 그쯤 되면 유럽 여행자들이 떼로 몰려 트레킹 한다고 한다. 나도 다음번엔 겨울에 라다크를 가고 싶다. 한겨울, 눈 오는 라다크와 마주하고 싶다. 추위는 싫지만, 눈을 좋아하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한 여름, 레로 가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1. 비행기 이동 (델리에서 2시간 정도 거리)
2. 지프 이동 (마날리에서 레 이동. 24시간 정도 걸린단다)
3. 버스 이동 (마날리 - 킬롱 - 레. 34시간 이동. 도중에 일박한다)
나는 3번을 택했다. 중간 1박은 숙소가 아닌 텐트 숙박이다. 버스 이동이 가장 저렴하다.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버스를 택한 건 아니다. 여행자들을 모아서 지프로 여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프는 좁다. 가끔 도출하는 나의 폐소공포증 때문에 버스를 택했다.
길은 산을 빙그르르 돌면서 이동한다. 직선 도로도 나오지만, 고도를 높일 때마다 산등성이를 나선형 모양으로 돌아야 한다. 그때마다 버스 옆으로 절벽이 보인다. 여기서 이탈하면 끝장이다. 실제로도 버스 사고가 많다. 그래선지 코너를 돌 때마다 버스는 클랙션을 심하게 눌러댄다. 건너편에서 오는 차와 충돌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코너를 도는 길은 대부분 1차선이다. 클랙션을 누르면, 보이지 않는 건너편에서 달리고 있던 차가 잠깐 멈춘다. 버스도 속도를 낮춰 몸을 조아리듯 위험천만한 길을 지난다. 고도의 운전 스킬을 요한다. 순간 집중력도 필요하다. 나는 인도 운전사들의 운전 실력에 감탄하면서 버스 창가에 스치는 풍경을 감상했다.
나는 원래 버스 안에서 잠을 못 잔다. 여행 중 대부분 차 안에서 잠을 안 잤다. 사고 우려로 인한 불안을 달고 살기 때문이다. 그 불안은 병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나라도 깨어있어야 한다는 강박증 같은 것이다. 레로 가는 버스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활한 풍경에 빠져 초반 레이스는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런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점점 귀가 막혀온다. 나의 뇌가 산소부족을 외치고 있다. 멍해지는 순간, 나의 뇌는 마치 빅뱅이라도 일어나듯 폭발과 확장을 반복하고 있다. '용량이 부족하니 터질 수밖에 없어'라고 외치는 것 같다.
머릿속에서 한창 빅뱅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하룻밤 묶을 텐트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다.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른다. 텐트 하나씩을 배정받아 짐을 푼다. 이때부터 나는 정신이 몽롱해져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그날 먹은 저녁 식사가 생각난다. 커리와 짜파티 등 기본 정식이었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었다. 부뚜막에 불 지펴서 하는 요리들인데 요리사의 실력을 놀랄 정도였다. 아프지만 맛있어서 꾸역꾸역 배당된 음식을 다 해치웠다.
깊은 밤, 잠은 도통 내게 찾아오지 않았다. 옆 텐트에선 드르렁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적막한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유일한 소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코 고는 소리이다. 나는 숄을 걸치고 나와 주변을 맴돈다.
하지만 빅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의 우주는 아직도 생성 기로에 서있다. 자꾸만 미지의 영역에서 울려대는 신호들이 내 머릿속에서 웅성웅성 대고 있다. 조만간 우주가 첫 울음을 터트리고 탄생할지도 모른다.ㅠㅠ
그런데 이때 머리가 아닌, 내 위가 또 다른 신호를 보낸다. 나를 거쳐간 음식들을 도저히 다음 코스로 내보낼 수 없다고 한다. 저녁 식사로 먹은 음식들이 내 안에서 방황한다. 그들은 다른 경로로 자신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바로 역류 현상이 발생했고, 고산증 발발 이후, 처음 먹은 내 저녁 식사는 보기 좋게 세상 밖으로 탈출했다. 한 번에 시원하게 쏟아내면 좋으련만, 식도 안에서 꾸물대고 있다. 술 마신 다음 날에 자주 해왔던 손가락으로 목구멍 찔러내기를 이어갔다. 드디어 놈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내내 땅을 응시하다 고개를 살짝 드니 주먹만 한 별들이 반짝인다. 저 별들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별들과는 비교불가한 블록버스터급 크기인가. 내 머릿속의 빅뱅도 마무리되면 나의 우주에도 저만한 크기의 별들이 반짝일까. 별들이 하나하나 내게 자기소개하듯 다가온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반갑게 맞아주지 못했지만, 그날의 별을 잊을 수 없다. 토하는 와중에도 별들의 향연은 또 다른 신세계다. 히말라야의 별은 스케일부터 다르구나 싶었다. 비로소 내가 하늘과 가까운 땅으로 향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총 34시간(정확히는 확인해봐야 함) 걸려 라다크의 중심지, 레에 도착했다. 한 여름, 레는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나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묶었다. 샤워기의 물은 졸졸졸 흐른다. 뜨거운 물은 주인이 따로 받아서 배달해 준다. 저녁때는 가끔 정전도 된다. 한 여름이지만, 밤에는 살짝 쌀쌀하다. 숙소 주인집과 옆집은 울타리가 없다. 언제든 서로 오고 간다. 나도 옆집에 놀러 가 차와 과자를 얻어먹기도 했다. 예전 우리네 시골 풍경처럼 정겹다. 그럼에도 집주인은 이곳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그만큼 외부 자본도 많이 유입됐다.
70년대에 라다크를 방문했던 헬레나 노르베리 유지가, 나중에 다시 라다크를 찾을 때였다. 공동체 의식이 강했던 이곳이 자본의 침투로 인해 피폐해진 이후였다. 헬레나가 현지인에게 묻는다. 이곳에서 누가 가장 불행하냐고. 현지인은 말한다.
이웃들과 비교를 통해 스스로 이제 불행하다고 인식한다. 불행의 의미를 몰랐던 이들은 개방 10년 만에 스스로의 행불행을 재단하게 됐다. 내가 만난 레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친절했다. 소박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레 자체도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곳이라 걸을 때 유의해야 한다. 도시 탐험을 위해 천천히 걷기와 생수는 필수다. 걸어서 근처 성에 오르고, 버스를 타고 스투파 구경도 했다. 길에서 만난 일본 여성 여행자와 동행해 일일투어를 했다. 우리 둘은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마다, 가끔 둘 다 숨을 헐떡일 때마다, 동시에 한 마디 한다.
레의 곰파들은 신비롭다. 볼 때마다 경이롭다. 기존에 알던 불교 사찰과는 다르다. 척박한 땅 위에서 그들의 삶은 고행 자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는 그 고행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몰린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행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라다크는 예전 라다크가 아니니깐. 물론 나는 그들의 수행을 인정한다. 지금은 21세기. 주변에 널려있는 유혹을 뿌리치고 수행의 길을 걷는다는 건 쉽게 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니까.
우리나라 막걸리와 비슷하다는 '창'이 먹고 싶어 골목을 돌아다녔다. 현지인들이 운영하는 집에서 먹을 수 있다는데 간판이 없으니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창을 파는 집을 찾았다. 집에서 주조한 창은, 막걸리와 거의 유사했다. 한 잔 걸치니 나의 시간은 달리의 그림처럼 늘어진 시계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선 느리게 걷기를 실천해야 하는데 발걸음이 더 느려졌다.
트래킹 계획을 취소하고 레 시내와 곰파들을 보러 다녔다. 아주 느리게. 5일 동안 있었지만, 별다르게 한 일은 없다. 아침에 숙소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거리를 걷고, 시장을 구경한다. 때가 되면 현지인 식당을 찾아서 뚝파를 먹는다. 우연히 여행자들을 만나면, 맥주 한잔하면서 수다를 떤다. 술김에 레 성에 오른다. 따로 또 같이를 반복하다가 그곳을 내려왔다.
내려올 때 나의 고산증은 잠잠했다. 하지만 같이 내려온 청년 둘은 심하게 고산증을 앓았다. 누구든지 이곳을 통과하려면, 고통이 수반된다. 라다크 여행은 기존 우리가 접한 세계가 아닌, 분명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다. 비록 지금은 자본에 물들었지만, 그곳으로 가는 여정은 분명 우리가 모르는, 차단된 문이 열리고, 그 틈새로 잠시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는 과정이다. 내가 구토를 하는 와중에 만난 별들이 분명 암시를 줬다. 이곳은 또 다른 별천지라고.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라다크를 찾으리라 다짐한다.
나는 지금 우주의 품에서 기생하고 있다. 우주라는 무한대의 공간에서 꿈을 꾸고, 숨을 쉬고, 하루라는 작은 인생을 버텨낸다. 내일은 다시 내일이라는 또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나의 여행이 지속 가능한 오래된 미래였다. 당시 여행을 발판이 되어, 지금껏 지구에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 일상이 지속가능한 이유, 그 한 편에 여행, 그리고 라다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