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 수없이 떨어져 봤다.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취직하면서부터 공모전을 준비했지만, 아직 참가상 같은 ‘소소한’ 상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수확이 없다니 그야말로 ‘폭망’이다.
내가 준비했던 분야는 문학 쪽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모니터를 켜고 낮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를 만들어냈다. 멋지거나 그렇지 않은 주인공을 창조하고, 그 주인공의 일상을 꾸며내는 일은 재밌었지만, 한편으로는 꽤 힘든 일이었다. 하루에 몇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더욱 힘들었다. 작품을 하나 만들어냈다고 좋아하기엔 그때는 절박했다.
공모전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한 때는 공교롭게도 출판사에 자리 잡은 시점과 비슷했다. 글을 매만지는 일을 하게 되면서, 글 쓰는 것을 포기한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달간 몇십 권의 책을 만들던 출판사에 다니며, 글자 자체가 짐처럼 느껴졌던 때였다(당시에는 TV 프로그램의 자막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Photo by YIYUN GE on Unsplash출판사를 몇 번 옮기며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이후, 공모전에 다시 도전할까 생각해보았다. 아직 그 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 불현듯 나의 역할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그전까지 나는 심사를 ‘받는’ 입장이었다. 발표일을 달력에 표시해둔 채 원고를 보내고 그날만 하염없이 기다렸다. 탈락한 자에게는 이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왜 떨어졌는지 알지도 못한 채 다시 다른 공모전을 준비했다. 어쩌면 그사이에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는 심사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투고한 원고를 살펴보는 것이 ‘심사’라고 말할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누군가의 글을 평가하게 된 입장이 된 것이다. 남의 글을 보며 나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원고의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를 역할이 바뀌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급하게 쓴 글은 정돈되지 않아 지저분하며, 퇴고를 거치지 않은 글은 날것의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자료 조사가 부족한 글은 허황하며, 감정이 지나치게 섞인 글은 낮에 보기에 낯간지럽다.
어쩌면 뻔해 보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놓치는 부분이다. 심지어 이런 말을 하는 나조차도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나서야 부족한 부분을 찾을 때가 많다.
글 쓰는 사람에게 많은 사람이 조언해준다고 나서지만, 그 조언이 무색할 만큼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을 때가 많다. 특히 글의 주인은 도대체 무엇이 잘못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낮에 편집자라는 명찰을 단 채 원고를 살펴볼 때는 ‘업무’로서 글에 대한 평가가 빠르게 튀어나온다. 그러나 밤에 작가 지망생으로서 나의 원고를 들여다볼 때는 해답을 알지 못한 채 막막하다. 간혹 원고의 고칠 점을 이야기하는 편집자에게 화를 버럭 내는 작가들이 있는데, 아마 자신의 눈에는 잘못된 부분들이 보이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그렇다고 편집자의 말이 다 옳다는 건 아니다).
앞서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을 때가 많다고 말했지만, 정답이 하나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글쓰기’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차라리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게 나을 정도로 답답한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글을 써야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덧붙여야 할 것이 자신의 글을 돌아보는 것이다. 쓰고 살피고 어루만지고 다듬는 과정이 묵묵히 이어져야만 한다.
공모전 도전을 내려놓고 처음에는 글쓰기 자체를 포기한 채 냉담한 독자로 돌아갔다. 그러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글 쓰는 것을 포기하는 데도 글을 써야 한다는 것.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결국 키보드를 두드려야 했다. 나아갈지 멈출지 아직 고민 중이지만, 멈추지 말고 조금씩 걸어보려 한다. 그것이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이며, 많은 사람에게 걷는 법을 알려주고픈 이유다.
커버 사진: Photo by Islam Hassa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