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서 놀자,
그러나 나는 더 깊어졌다
브런치스토리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단지 ‘글쓰기 놀이’를 하고 싶었다. 글을 쓰는 일이 즐거웠고, 무엇보다도 부담 없이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누군가가 읽어줄 수도 있고,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았다.
브런치라는 공간은 그렇게 ‘가볍게’ 열려 있었고, 나는 마치 놀이터에 들어선 아이처럼, 신이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이지가 쌓이고, 나만의 이야기 결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노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나를 붙들고 있었고,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으며,
내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조용히 질문하고 있었다.
1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 나를 훈련시켰고,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더 깊은 곳으로 스스로를 이끌어갔다. 단지 몇 편의 글을 썼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삶을 대하는 내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 과정에서 다섯 가지 씨앗을 얻은 듯하다.
도전정신, 루틴과 책임감, 끈기, 집중력, 그리고 독서력.
표현만 보면 평범한 단어들이지만, 이제는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누구도 내게 “이걸 꼭 해보라”고 말하지 않았다.
마감일도 없고, 보상도 없고, 보장된 독자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브런치북을 시작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하고 싶었다.
그 욕망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단순히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은 충동?
그보다 더 깊은 어떤 이유,
‘살아 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나에게 조용한 도전이었다.
시간 속에 사라져 가는 나를 붙잡고,
지나가는 감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낸 하루를 언어로 구체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도전은
외적인 결과가 아니라, 내면의 확장이었다.
익숙한 나에서 조금 더 멀리 나아가는 것.
글이라는 언어로 나를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권의 서사’로서 나를 구조화하는 시도였다.
처음에는 글의 제목을 정하는 것조차 막막했고,
단락을 배열하는 것조차 낯설었다.
하지만 그 막막함을 견디며, 하나씩 써 내려가는 과정이
결국 도전정신을 단련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당장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시작하고, 끝까지 가보자.’
이 말은 이제, 글쓰기뿐 아니라
내 인생 전체의 태도가 되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그건 지속하는 일이다.
한 편의 글을 써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주기적으로 이어가고,
내가 만든 흐름을 스스로 지켜나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브런치북은 외부에서 정한 마감이 없다.
하지만 글을 올리지 않으면,
나만 아는 침묵이 내게 찾아온다.
약속을 어긴 것 같은 기분.
기다리던 누군가를 실망시킨 것 같은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쓰겠다고 말한 나 자신’에게 지는 책임.
책임감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의 글을 성실하게 완성하는 것,
어제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는 것,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의 중심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 옮겨오는 일.
책임은 반복이고, 반복은 결국 나를 만들었다.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는 날이 있었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고,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번이고 지운 날.
그럴 땐 노트북 앞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앉았다.
끈기란 특별한 재능이 아니다.
감정이 따라주지 않아도, 의미가 선명하지 않아도,
그저 한 줄이라도 써보는 힘.
예전 같았으면 ‘그만둘 이유’를 먼저 찾았겠지만,
이제는 ‘계속할 이유’를 먼저 찾는다.
모든 이유를 안고, 계속하는 것이다.
그 끈기 덕분에,
이제는 어떤 일이든
‘내가 붙들 이유가 있다면’
끝까지 해보자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처음엔 쉽게 흩어졌다.
단어 하나에 집착하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나는 ‘몰입하는 법’을 몸으로 익혀갔다.
그건 의지가 아니라,
호흡처럼 익혀가는 감각이었다.
몰입을 위해 스스로 정한 규칙이 있다.
글 발행 전 2시간만 글을 쓴다.
그 외의 시간엔 쓰지 않는다.
새벽 5시 발행 시간을 놓치면, 그날은 그냥 넘긴다.
나에게 하루에 단 한 번의 기회만 주는 것이다.
자동적으로 몰입하게 된다.
이 간결한 리듬은 1년 넘는 습관이 되었다.
집중은 능력이 아니라, 자세의 문제였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선택한 일에 마음을 다하는 것.
그리고 이 집중력은 글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북디자인을 할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책을 읽을 때도
그 2시간의 감각은 다른 일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가끔 내가 쓴 문장이 낯설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내가 쓴 글인데, 내 마음에 닿지 않는 느낌.
그럴 땐 다시 책을 펼쳤다.
타인의 문장을 읽으며,
내 문장을 점검하고,
그 결을 조용히 다시 배웠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으니,
좋은 문장을 오래 들여다봐야 했다.
책을 읽는 일은 글을 쓰기 위한 준비였고,
글을 쓰는 일은 책을 읽는 눈을 새롭게 열어주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결국 책을 제대로 읽는 사람이었다.
브런치에서 놀자고 했다.
실제로 나는 잘 놀았다.
그러나 그 놀이는 단지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 안에서 쓰고, 흔들리고, 붙들고, 훈련받고, 다시 태어났다.
작은 시작은 결코 작지 않았다.
놀이처럼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그 안에 진심이 깃들자,
나는 그만큼 깊어졌다.
브런치북을 쓰며 얻은 것들은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새로운 질서이며,
나를 지탱하는 내면의 근력이 되었다.
나는 글을 썼다.
그리고
글이 나를 빚었다.
이 브런치북, [브런치에서 놀자]에는 저의 지난 18개월, 지담 작가의 지난 31개월까지. 꽁냥꽁냥 브런치에서 함께 놀며 스스로를 키우고 글로 벗을 만들고 세상으로 한발 나아간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담깁니다.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저희 둘이 함께 '작정'하고 시작한 [브런치에서 놀자].
본 브런치북을 통해
'글'에 '뜻'을 지니고 '길'을 걷는 많은 분들이
'감'을 얻어 '힘'을 지니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결'이 같은 이들과
'벗'이 되어 함께 간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Ep1. 브런치 작가 16개월의 소회, 지담작가와의 작당
Ep2. 브런치 작가의 시작: 내가 택한 세 가지 첫걸음
Ep3. 브런치북을 쓰며 브랜딩을 이루는 방법
Ep4. 북디자이너가 브런치북을 즐기는 방법
Ep5. 브런치글을 포트폴리오로 활용하는 방법
Ep6. 브런치북으로 나를 키워내기
Ep7. 브런치북을 위한 글쓰기 루틴 그리고 노트들
Ep8. 브런치글로 얻게 된 내면의 훈련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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