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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을 책으로 엮어내는 이유에 대하여

by 근아

매일 새벽, 나는 백지를 마주한다.

익숙한 커서의 깜빡임은 어느새 내 심장 박동처럼 리듬을 타며 말을 건다.
“오늘, 너는 무엇을 마주할 준비가 되었니?”

그 물음 앞에서 나는 매번 망설였고, 때론 도망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백지를 피하지 않고 마주한 날들 속에서, 나는 한 문장씩, 한 호흡씩,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왔다. 그렇게 꺼낸 문장들은, 단순히 하나의 글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날의 나를 기록하고, 지금의 나를 이해하게 해주었으며, 앞으로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주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500편의 글이 쌓였다.
그중 상당수가 자연과 호주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사실은, 그 글들이 단지 우연히 쓰인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일관된 시선과 감정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난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반복되었던 소재들, 문득문득 되짚게 되는 감정들, 스쳐갔으나 끝내 나를 붙잡고 놓지 않았던 단어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조각들이었다.


브런치에 써온 글들은 처음엔 ‘기록’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록은 ‘대화’가 되었고, 이제는 ‘증언’이 되어가고 있다. 그 시절의 나, 그 감정의 결, 그 순간의 사유와 선택들을 나만의 언어로 남겨온 이 모든 글들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한 권의 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글들을 여러권의 책으로 엮고자 한다.


단지 글을 모아 한 자리에 두기 위함이 아니다. 나의 생각이 어떤 방향으로 흘렀는지, 무엇을 계속해서 반복했고, 어디에서 머물렀는지를 되짚어 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여정을 독자와 함께 다시 읽고, 다시 느끼고, 다시 사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책은 브런치보다 조금 더 긴 호흡을 요구한다. 구조를 고민하고, 흐름을 연결하고, 처음과 끝을 상상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긴 호흡 속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글이 나를 이끌고 간 방향을, 내가 이제는 더 명확히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는 오늘 하루의 무게를 담았다면,

책은 그 모든 날들이 모여 만들어낸 ‘시간의 결’을 담는다.

하루의 문장이 일기라면,

책은 그것들의 궤적이다.


내가 글을 쓰며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불확실함’이었다.
이 글이 누구에게 닿을 수 있을까. 이 감정이 과연 말이 될까.
그러나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매일 백지를 마주했고,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책으로 엮는 이 작업은, 나에게 있어 ‘확인’이다.
글이 단지 순간의 감정으로 끝나지 않고, 시간의 축적 속에서 생명력을 얻어가는 과정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또 다른 시작이다. 이미 써온 이야기들이 나를 다시 이끌고, 새로운 문장을 쓰게 할 테니 말이다.


나는 여전히, 백지 앞에 서면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 속에서 꺼낸 한 문장이,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고, 나와 타인을 이어주는 가장 진실한 언어가 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두 권의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공저 『엄마의 유산』,
다른 하나는 나의 첫 번째 단독 저서 『사유의 힘』이다.


두 책 모두, 브런치에서 시작되었다.
매일 백지를 마주하며 썼던 수많은 이야기들이다.


『엄마의 유산』은 내가 북디자인과 그림으로도 참여한 책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나의 글 역시, 오랜 시간 내 삶과 마주한 결과였다. 어머니라는 이름, 그 유산에 담긴 삶의 방식, 그리고 내가 자식으로서, 또 엄마로서 살아오며 느꼈던 것들을 한 편 한 편 꺼내어 붙잡고 써 내려갔다.


『사유의 힘』은 한 걸음 더 내밀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온 질문들과 정신의 결을 그대로 드러낸 글들이다. 철학이 거창한 학문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바라보기 위한 '하루의 자세'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그것은 일상의 조각에서 출발한 생각들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질문에서 비롯된 통찰들이며, 결국엔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한 한 사람의 기록이었다.


글은 언제나 '그 순간의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쓴 글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에게 돌아와
새로운 의미로 말을 걸어온다는 것을.

책으로 엮는다는 건, 그래서 나에게 ‘정리’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는’ 과정이다.

그때는 몰랐던 마음의 깊이를 다시 들여다보고, 놓쳤던 질문에 다시 답을 건네는 일이다.

이 두 권의 책은 어쩌면 사람의 삶을 꿰뚫고 흐르는 두 개의 강줄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존재에 대한 사유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


모든 시작은 브런치였다.
하루하루 쌓아온 글이, 이제는 더 먼 길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백지를 마주하며,
조심스럽게 한 문장을 꺼내 들 준비를 한다.


그 한 문장이
오늘의 나를 보여주고,
내일의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이 브런치북, [브런치에서 놀자]에는 저의 지난 18개월, 지담 작가의 지난 31개월까지. 꽁냥꽁냥 브런치에서 함께 놀며 스스로를 키우고 글로 벗을 만들고 세상으로 한발 나아간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담깁니다.

같은 듯 다른, 다른 듯 같은, 저희 둘이 함께 '작정'하고 시작한 [브런치에서 놀자].


본 브런치북을 통해

'글'에 '뜻'을 지니고 '길'을 걷는 많은 분들이

'감'을 얻어 '힘'을 지니시길 바랍니다.

이를 위해 '결'이 같은 이들과

'벗'이 되어 함께 간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은 근아이야기, 9번째 에피소드였습니다.


Ep1. 브런치 작가 16개월의 소회, 지담작가와의 작당

Ep2. 브런치 작가의 시작: 내가 택한 세 가지 첫걸음

Ep3. 브런치북을 쓰며 브랜딩을 이루는 방법

Ep4. 북디자이너가 브런치북을 즐기는 방법

Ep5. 브런치글을 포트폴리오로 활용하는 방법

Ep6. 브런치북으로 나를 키워내기

Ep7. 브런치북을 위한 글쓰기 루틴 그리고 노트들

Ep8. 브런치글로 얻게 된 내면의 훈련 5가지

Ep9. 브런치북을 책으로 엮어내는 이유에 대하여



지담 작가님의 브런치북 >>> 매주 토요일 5:00am에 발행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ithgunah


https://brunch.co.kr/@fd2810bf17474ff#works



근아 작가의 브런치북 >>> 매주 월요일 5:00am에 발행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themekunah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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