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안 그래도 바쁜 와중에 지원까지 가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것만 같았다. 물론 일을 다 끝마친다면 해냈다는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요청이 들어온 순간에는 마음속에서 "너도 힘든데 남의 것을 왜 해주냐"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선택은 고민된다. 좋은 사람으로 있고 싶어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거절을 잘 못하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분명 수익을 위해서는 좀 더 해야 한다는 명분은 몸이 힘들지언정 받아들이게 된다. 한계치를 분명히 알고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구역에 익숙해져서 후에 이 지역을 들어오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는 건지, 아니면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건지 마음은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다만 이미 하기로 했다고 말한 순간부터는 내 자신부터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도록 노력하고자 했다.
자기계발서에 쓰여 있는 글들처럼 "누군가 부탁해 온다면 최대한 즐겁게 해줘라"라든지 "지금 이 순간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라"라든지 "사소한 것에 감동하라"라는 여러 문구들을 되새기며 일을 했다. 뻔한 말 같아 보이지만 되새기고 실천하다 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그런 여러 마음들을 가지고 배송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시작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물량 증가로 평소 배송 시간보다 늦어지게 되자 고객들의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고기인데 상하면 큰일 난다. 직접 찾으러 가겠다." "오늘 해당 주소지에 없으니 다른 주소로 변경해 줘라" 등 고객들의 요구가 많았다.
"주소 같은 건 원칙적으로 바꿀 수 없는 건데 왜 요청을 하는 거지!"
"그렇게 급한 거면 퀵으로 받아야지, 왜 택배로 시켜서 이 사단을 만든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다 쿠팡 때문이다! 너무 빠르게 배송하니까 일반 배송 건도 오후 5시 이후만 와도 늦게 왔다며 항의하기 일쑤다. 회사가 돈을 아끼려고 알바를 추가로 고용하지 않아서 분류장에 차량이 늦게 왔다는 원망과 각종 부정적인 생각은 그날의 하루 컨디션을 좌우했다.
인간은 본래 반대로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긍정적이 되어야지 라고 생각하면 부정적인 결과들이 도출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면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닌 듯한 결과에 또 마음이 변하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역시 전자다. 아무리 반대로 된다 해도 부정적인 생각의 결과는 화만 남기 때문이다.
여하튼 긍정이든 부정이든, 주어진 상황이 지속적으로 내 몸이 힘든 상황에 처하면 그 과정을 이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다잡고 결국 하루 배송을 끝마쳤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는 근 1년 동안 무사고와 무클레임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물론 공식적인 결과표가 나온 건 아니다. 하지만 암암리에 날 대하는 선배 동료나 지원 업무를 지속적으로 요청하는 것을 보았을 때, 입소문이 나는 게 느껴진다.
가끔 자신의 클레임 건에 대해 내게 자문을 구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런 점을 고려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방식은 기존에 하던 사람이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방식이다. 쿠팡과 같이 배송 완료 사진을 찍는 행동이다. 익숙해지면 할 만하지만 잘하지 않던 사람들이 시행하기에는 부담감이 크기 때문이다. 시간이 생명인 택배 배송일은 사진까지 찍어가며 하기에는 매우 귀찮다. 나도 안 해도 된다면 안 하고 싶다. 그렇지만 하루 300개가 넘는 배송 건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다.
심지어 오늘 배송 건 중에는 내가 잘못 배달했다는 사실을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확인 후 재배송했다. 정황상 물건이 한 개가 비는데 왠지 잘못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박스가 비슷했고 심지어 받는 분 이름까지 비슷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만일 사진이 없었더라면 나는 이동 중에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터였다. 한 번 배송하고 지나간 곳은 쉽사리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자신이 배송한 물건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하면 물건을 찾지 못한다. 고객과 마찰이 생긴다. 그리고 변상한다. 또한 서비스 지수가 떨어진다. 이 같은 현상은 내가 1년간 배송해 본 결과 여전히 그러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그런 실수들을 언변으로서 극복하거나 최종적으로 변상으로 해결한다.
비싼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만 사진으로 남겨두거나 메모를 통해 배송한다. 그리고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그냥 배송한다. 그리고 싸 보이는 것은 비축해 둔 사고 해결금으로 처리한다. 이게 지금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들이 행하는 형태다.
분명 배송할 곳은 많고 시간은 없기에 행하는 방법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 또한 인지한다. 그럼에도 난 평소보다 한두 시간 더 걸릴지언정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은 증거물은 배송 후에도 내게 심리적인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좋은 점이 있어도 나는 동료들에게 진지하게 사진을 찍으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그들이 구축해놓은 시스템에 내가 하는 행동으로 인해 균열이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인데 내 행동이 강제되면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익은 감소하고 일은 힘들어지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클레임으로 인해 고통받는 기사들을 보며 조언을 해주고 싶지만, 그 행동이 그들의 배송 시간을 늘려버리는 형국이 될까 우려돼 말을 아낀다. 하지만 결국 내가 조언하지 않더라도 회사에서 사진 찍는 것을 강제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미 쿠팡이 해오는 일이기에 그렇다. 물론 쿠팡 기사들을 보면 이러한 사진 찍는 행동으로 인해 아파트 배송을 할 때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그만큼 엘리베이터가 정차되어야만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로 인해 고객들의 불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쿠팡 기사는 타 택배사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날 때 이러한 피해 의식으로 인해 스스로 계단으로 배송하거나 같이 타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나도 바쁘지만 남의 시간을 뺏을 수 없다는 배려가 인상 깊었다. 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은 심금을 울렸다.
빨리 받고 싶다는 인간의 욕심이 사람을 모진 환경에 처하게 만들고, 힘들게 만든다. 아무리 늦더라도 당일에 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으면 좋겠다. 사람들의 퇴근 시간에 맞춰 배송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실상은 기사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택배 일은 그저 물건을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중한 연결고리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