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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계꽃 Mar 15. 2024

내가 내린 커피가 제일 맛있는 걸  어떡해

하루 24시간 중 10분, 오직 나를 위한 움직임

이상심리학에서 정신 장애 진단을 위해 사용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현실검증력이 대표적인데, 글자 그대로 상상과 현실을 분별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흔히 말하는 신경증과 정신증을 가르는 중요한 척도다. 다른 주요 기준은 적응 기능, 그중에서도 자조(自助) 능력이다. 스스로를 돕는 기능이란 무엇일까? 내 몸뚱이를 씻고 먹이고 재우는 능력을 말한다. 이게 능력이라고? 배고프면 먹고 찝찝하면 씻고 졸리면 자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해 능력이라 일컫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심각한 우울증을 앓는 이들에겐 세 가지 모두가 쉽지 않은, 거의 불가능한 과업이다(이건 게으름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따라서 적어도 오늘 침대에서 일어나 씻고 밥을 먹었다면 ‘나’는 잘했다는 칭찬을 듣기에 충분하다.



2020년 처음 프리랜서 번역가로 먹고살기를 도전했을 때 가장 절실했던 것이 바로 이 ‘자조 능력’이었다. 늘 휴식의 공간이었던 집에서 일과 휴식, 두 가지 기능을 병행하는 일은 겪어보지 않으면 그 어려움을 가늠하기 힘들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루틴을 만들어 지키려 했다. 아무리 늦어도 8시에는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세수를 한 뒤 커피를 내려 9시까지 서재로 가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면 간단하다 싶은 일도 구멍이 뚫릴 때가 많았다. 전날 자정이 지나도록 번역을 붙들고 있던 날은 다음 날 눈 뜨면 10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귀찮기도 하고 어차피 집에 있을 건데 뭐,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잠옷 바람 그대로 오후까지 일한 적도 있었다. 늦잠을 잔 날에는 화들짝 놀라 서재로 뛰어 들어가 부스스한 얼굴로 빈속에 커피를 들이부었다. 분명 스스로를 돕기 위해 만든 루틴이었는데 날이 갈수록 자괴감만 더해졌다. 가뜩이나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압박감과 번역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매일 시달리던 때였다. 그해 11월 세 번째 역서를 끝낸 후 마주한 ‘나’는 생기도 의욕도 잃고 뾰족한 가시만 잔뜩 세운 채 한껏 몸을 웅크린 고슴도치 같았다.



커피를 배우게 된 건 이때였다. 보다 못한 남편이 집 근처 바리스타 학원에서 커피도 배우고 바람도 쐬는 게 어떻겠냐 제안했다. 오랫동안 커피를 좋아했기에 내 커피, 다시 말해 내 취향에 꼭 들어맞는 커피를 제대로 추출해서 먹고 싶단 생각이 늘 머리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긴 했다. 동시에 다른 마음도 들었는데, 번역료만으로 생활비가 부족하니 바리스타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서 카페 알바를 같이 하면 몸도 움직이고 수입도 늘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일배움카드 찬스로 바리스타 2급 자격증 과정에 등록했다.




바리스타 수업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첫 주는 커피의 어원, 커피 품종, 수확, 가공법 등 이론 수업만 했는데도 너무 재밌어서 커피를 잘 마시지도 않는 남편에게 매일 쫑알쫑알 그날 배운 내용을 떠들어댔다. 이렇게 재밌는 것을 나만 알 순 없어! 이런 마음이었달까. 둘째 주부터 본격적으로 에스프레소 추출을 배웠다. 기계 구조와 각 부품의 이름을 익히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뜨거운 물과 증기를 내뿜는 이 거대한 기계 자체가 공포스러웠다. 가뜩이나 슬로우 러너인데 기계에 잔뜩 겁먹은 상태다 보니 손을 덜덜 떨어가며 실습에 임했다. 우리 조는 다들 빠릿빠릿하고 손놀림도 좋았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자꾸 어긋났다. 그래도 에스프레소 추출까지는 어찌저찌 멱살 잡혀 따라왔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바리스타 2급 실기 시험에서는 에스프레소 4잔, 카푸치노 4잔을 만들어야 한다. 카푸치노 제조 실습이 시작되자 나는 다시 한 번 쪼그라들었다.



우유 스티밍부터 녹록지 않았다. 뜨거운 걸 무서워해서 스팀 피처를 잡는 행위 자체가 공포였다. 스팀 밀크의 적정 온도는 60~70도인데 이게 60도가 되면 자동으로 머신이 멈추는 게 아니다. 피처를 손으로 감싼 상태로 스티밍을 시작해 60도가 됐다 싶으면 수동으로 스팀을 멈춰야 한다. 60~70도의 온도를 손으로 감지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시작 전부터 질겁했다. 우유가 담긴 피처를 들고 60도가 될 때까지 가만있으면 되는 것도 아니다. 공기 주입이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스팀 완드를 담궈 롤링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스팀 밀크로 카푸치노를 제조하려면 미리 추출한 에스프레소의 크레마가 깨지지 않게 적절한 손목 스냅으로 안정화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유 피처를 살살 흔들어 라떼 아트를 그린다. 조원들은 벨벳 밀크에 예쁜 하트가 그려진 카푸치노를 척척 만들어 냈다. 그들이 만든 카푸치노를 보다가 내가 만든 카푸치노를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트도 엉망이고 우유 거품도 벨벳은커녕 게거품일 때가 많았다. 하루는 너무 속상해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에 와 울었다. 남편은 취미로 배우는 건데 대체 왜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나도 조원들처럼 잘하고 싶은 걸 어떡하라고!




몸을 쓰는 직업의 묘미는 연습하면 또 못할 것이 없다는 데 있다. 자신감이 바닥이었지만 꾸역꾸역 수업에 나갔고 자격증 시험 보기 2주 전부터는 조원들과 따로 연습까지 한 끝에 무사히 바리스타 2급에 합격했다. 수십 군데 카페 알바를 지원했고, 모조리 떨어진 후에야 30대 중반의 알바생을 고용할 카페는 스타벅스를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던가. 종강 후 반년이 지난 시점에 같은 조원이었던 분이 카페를 인수하면서 일주일 정도 도와줄 사람이 급히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피스 상권의 프라임 타임에 근무하는 영광을 누렸다. 눈물까지 보이며 배운 라떼 아트는 사치였다. 에스프레소 머신과 한 몸이 되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샷만 내리 뽑았다. 딱 일주일 재미있게 일하고 커피는 영원히 취미의 영역에 두자고 다짐했다.



2021년 여름엔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어떤 말은 두 사람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게 했다. 그해 7월 나는 결혼생활을 끝내고 일산으로 이사 왔다. 신혼집에서 짐을 빼던 날 가장 먼저 커피 머신과 그라인더를 챙겼다. 상담심리사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고 다시 조직 생활을 시작했다. 상황은 2020년 처음 프리랜서 번역가에 도전했을 때와 비슷한 듯 달랐다. 똑같이 막막하고 불안했지만 적어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오전에 사이버대 강의를 듣고 오후에 출근해 퇴근하면 자정이 훌쩍 넘는 생활이 1년 넘게 지속됐다. 중간에 번역이 끼어들면 주말도 반납했다. 솔직히 너무 힘들 땐 잠시 예전 생활이 생각났다. 편히 살 수도 있었는데 사서 고생한다는 부모님 말씀에 몇 번 휘청거리기도 했다. 속상해서 그러신다는 걸 알아도 답답했고 쓰라렸고 서운했다. 다행히 주변에 기댈 수 있고 손잡아줄 사람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커피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내리는 커피’가 있었다.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몸을 돌보는 건 어떻게 해서라도 할 수 있었다. 정신을 돌봐준 건 매일 아침 직접 내려 마시는 커피였다. 원두를 분쇄하면 그라인더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커피 향이 방안에 퍼진다. 그다음 포타 필터를 저울에 올리고 분쇄된 원두를 정확하게 계량한다. 추출 전 예비 동작도 빼놓아선 안 된다. 커피 향을 맡으며 사부작사부작 손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정신이 맑아진다. 머신에 포타 필터를 끼우고 버튼을 누른 뒤 25~30초 내외로 약 28~30g의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유리컵에 얼음을 한가득 담고 찬물을 붓고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얹는다. 진한 크레마를 뚫고 스테인리스 빨대로 한 모금 쭉 빨면 아, 이거지. 역시 내가 내린 커피가 제일 맛있어! 오감을 모두 동원해 머리를 깨운 후 뒷정리와 설거지까지 마치면 대략 10분이 소요된다. 하루 24시간 중 10분, 오직 나를 위한 움직임. 더 이상 커피는 단순히 카페인으로 아침잠을 쫓아내는 도구가 아니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고, 다시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거의 매일 내가 내린 커피를 마시며 강의를 듣고 출근을 했고, 두 번의 기말고사를 치르고 한 권의 역서를 끝냈다. 이 10분으로 2021년과 2022년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나처럼 모든 건 지나가기 마련이다. 2023년은 작년과 비교해 또 많은 것들이 변했다. 퇴사를 했고 6번째 역서를 맡았고 사이버대 심리상담센터에서 수련할 기회를 얻었다. 번역을 마치면 다시 밥벌이를 찾아 나서야 할 테지만 막막함과 불안함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밀어닥치지 않는다. 밀어닥친다 해도 피하지 않을 것이다. 무섭다면 지금껏 그래왔듯 커피를 내리면 된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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