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켄타는 초주검이 된 정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다리로 정씨를 툭툭 차보지만 미동이 없었다.
“죽은 건가?” 켄타가 물끄러미 키무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습니다. 이 놈 덩치값을 못하는군요! 하하하핫!” 키무라는 아쉬운 듯 입맛을 쩝쩝 다셨다.
“유치장으로 이 놈 옮기고 최씬가 뭔가 그놈을 데리고 와!” 켄타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네! 바로 데리고 오겠습니다!” 키무라는 밖에 있던 순사보를 시켜 정씨를 유치장으로 옮기게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호성은 비에 잔뜩 젖은 꼴로 취조실로 들어갔다.
“저.. 경부님. 시간이 많이 지났구먼요. 식사도 안 하셨을 텐데... 제가 요 앞 식당에서 따뜻한 국밥을 좀 사 왔구먼요. 한 숟갈 드시고 하시는 게 좋을 거 같구먼요.”
“국밥이라.. 네 꼴은 그게 뭐야?” 호성의 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보며 켄타가 물었다.
“아까부터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구먼요. 덕분에 더위가 조금은 사그라들거 같구먼요. 혹시나 몰라서 국밥 사오는 길에 경부님 댁에 들러 옷가지들도 조금 챙겨 왔구먼요.” 호성은 이빨을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웃음이 나온단 말인가!” 켄타는 호성을 보며 소리를 꽥 지르고는 취조실을 빠져나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호성도 자리로 돌아가 수건으로 젖은 옷과 머리를 대충 닦는다. 물기가 젖어 찝찝하긴 했지만 더운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장 쪽을 살펴보니 정씨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있었다. 구두닦이 박씨보다 더 심하게 당한 듯 정씨는 꼭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숨은 쉬고 있는지 가서 확인해보고 싶지만 켄타가 또 무슨 불호령을 내릴지 몰라 그냥 참기로 했다.
켄타는 자리에 앉아서 호성이 사온 국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몇 시간 동안 키무라가 정씨를 괴롭히는 장면을 봐온 터라 입맛이 없었다. 억지로 다 식어버린 국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고는 밥을 씹는 둥 마는 둥 한 참동안이나 입에 물고만 있었다.
두어 숟갈 더 뜨는 둥 마는 둥 하다 켄타는 국밥을 치우고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는 눈을 감았다. ‘참 피곤한 하루다.’
창밖으로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눈을 붙였다.
숙희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를 많이 맞아서인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해서인지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고, 빨리 이 어둠이 가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도대체 그 사람이 왜 그랬을까.” 숙희는 방구석에서 이불을 꼭 쥔 채 아까 보아 그 눈빛을 더듬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어두웠지만, 그의 눈빛이 틀림없었다.
숙희는 이때까지 생긴 모든 사건들이 그가 한 짓인지, 오늘 상수를 죽인 것만 그가 한 짓인지 고민해 보았다. 그가 사람을 죽일 이유는 없었다. 누구에게 원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원한을 산일도 없을 거라고 숙희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앞으로 어떻게 그 사내를 대해야 할지 생각해 봤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서 신고를 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는지 고민되었다.
다시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너무 무섭고, 지금 경찰서로 간다고 해도 사람이 있을지, 당장 그를 잡을 수 있을지도 고민이 되고, 더 무서운 건 숙희 자신이 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그 사람이 알기라도 한다면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숙희의 고민이 깊어졌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숙희는 같은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숙희는 날이 밝자 깨끗하게 얼굴과 몸을 씻었다.
거울을 보며 쪽진 머리를 만지는데, 어제 이홍수에게 맞은 뺨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개자식!” 숙희는 이홍수를 떠올리며 욕지거리를 한다. 정성스레 쪽진 머리를 만들고 나니 잠이 밀려왔다. ‘날이 밝았으니 괜찮겠지...’ 생각하며 숙희는 그제야 방안 구석에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