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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그와의 대화는 마치 신호등 같았다.
그의 전화는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녹색 불빛이었고, 동시에 내가 멈추고, 나아가고, 기다려야 할 순간을 알려주는 규칙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신호등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늘 같은 시간 들려오던 그의 연락이 반나절 동안 닿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어두운 도로에서
멈춰야 할지,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왜 연락이 없지?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사고 난 거 아냐?', '혹시... 칼부림사고?'


머릿속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상으로 가득 찼다.



저녁 6시.

드디어 휴대폰 화면에 그의 이름이 떴다.


마치 죽었던 심장이 깜짝 놀라 다시 뛰기 시작한 듯, 미친 듯이 뛰었다.


“여보세요?”


“미안해... 연락 못 해서.”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이 하나도 없었다.


“괜찮아?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서둘러 물었다.


“몸이 좀 안 좋아. 계속 아팠어.”

이어지는 그의 말이 내 머릿속을 새하얗게 만들었다.


“병원은 갔어? 심한 거 아니야?”
감출 수 없는 불안에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아니, 그냥 쉬면 나아질 거 같아.”

그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근데... 미안해. 너 기다리게 해서.”

가쁜 숨과 함께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갔다.


“괜찮아?”

대답 대신 침묵이 흘렀다.


“짱? 듣고 있어?”

다시 물었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짱! 괜찮아?!”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뚜...뚜'

하지만 돌아온 건 전화가 끊어지는 소리뿐이었다.


휴대폰은 식은땀으로 미끄러질 듯했고,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119를 부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에 스쳤다. 그러나,


‘직접 가야겠어.

그냥 기다릴 순 없어.’


이내, 마음을 돌이켰다.



성인이 되고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를 만난다는 것이,


심지어 첫 만남에 집에 찾아간다는 것이

이상하고 겁이났지만


생각이 끼어들 여유를 주지 않고

불안은 나를 재촉했다.


나는 지금 당장,

얼른 그의 집으로 가야만 했다.


다급한 마음으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다행히 나는 그의 주소를 알고 있었다.


그 주소를 알게 된 건 조금 어이없는 이유 때문이었다.


몇 주 전, 내가 배달 음식을 잔뜩 시켜 먹고 남은 것들을

택시에 태워 짱의 집으로 보냈던 일이 떠올랐다.


택시 기사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본인이 안 가세요?”
“아니요, 그냥 음식만 가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대충 넘길 수 없었다.

그를 위해 직접 움직여야 했다.


배달음식을 보내던 그날과는 다른, 더 진지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짱을 위한 음식을 챙기고,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팬티.

내 팬티였다.


그렇게 나는 한 손에는 짱을 위한 음식과 선물을,
또 다른 한 손에는 두근거리는 심장과 팬티를 움켜쥐고 문을 나섰다.


이건 방구석에 갇혀 있던 내가 세상 밖으로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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