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자원봉사자가 보는 시선
Cheyne-Stokes breathing, 체인스톡 호흡(체인스토크스호흡) 깊고 빠른 호흡과 무호흡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으로, 교대성 무호흡이라고도 한다.
호스피스에 10년 넘게 발길을 이어오고 있지만, 체인스톡 호흡을 직접 마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체인스톡 호흡은 임종 전 증상 중 하나로써 얕은 호흡과 무호흡, 과호흡이 반복된다. 임종이 다가왔음을 시사하는 다양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임종실, 병원에 따라서는 별님방으로 불리기도 하는 1인실로 이동한다. 발마사지, 샴푸, 목욕 등의 자원봉사자 손길보다는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우선시하게 된다. 따라서 자원봉사자가 적극적으로 함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날의 만남이 기억에 남는다.
급격하게 안 좋아진 상태에 아침 일찍 갑작스럽게 임종실로 옮겨진 환자였다. 1인실에 들어갔을 땐 병간호를 하던 아들이 혼자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버지와의 시간을 위해 다른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한 상황이었다. 가족들 모두 병원으로 오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임종실로 이실하기 전, 몇 주 동안 지켜보며 함께 했던 환자와 보호자였다. 목욕도 매주 하셨었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목욕을 못 하는 날엔 샴푸나 발마사지를 하시기도 했다. 그동안 함께 돌봐드리며 정서적 유대감을 키워와서였을까, 임종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불안하고 초조한 아들의 마음이 봉사자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들은 다른 가족들이 오기 전까지 기도를 함께 해달라고 요청했다.
환자들의 정서적 지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호스피스에서는 각 종교에 맞는 다양한 종류의 기도문이 준비되어 있다. 미묘하게 다른 천주교와 개신교의 기도문을 매주 읽다 보니 개인적인 종교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곤 했다. (미사 시간에 자꾸 기도문 틀려도 이해해 주시기를...) 불교 기도문 또한 입에 붙었다. 어느 종교든 환자가 마음의 위안을 얻고 잠시라도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읊는다. 어쩌면 호스피스 안에서는 마지막까지 누군가를 향해 매달려 보기도 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가 아닐까 싶다.
그날 환자의 종교는 생각나지 않는다. 기도하는 그 순간에 느꼈던 당혹스러움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세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환자의 침대를 에워싸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의식이 희미한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조용한 병실에 환자의 거친 호흡 소리와 기도 소리만 뒤섞여 들렸다. 그때였다. 환자가 거칠게 숨을 몰아 쉬더니 이윽고 숨을 멈추는 것이 아닌가, 들숨과 날숨 사이에 몇 초간의 텀이 있다고만 여겼는데, 생각보다 길어진 호흡과 호흡 사이에 병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기도 소리는 멈춰고, 아들은 벌떡 일어나 환자의 어깨를 잡고 이야기했다. "아버지!!"
임종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경험을 한 적이 없던 나도 당황했고, 어쩔 줄을 몰라 굳어 있었다. 그때였다. 환자가 호흡을 몰아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병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안도하며 다시 기도를 이어갔다.
눈으로 글자를 보고 입으로 뱉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한 가지 말만 되풀이했다. '제발, 가족들 빨리 오세요, 그리고 모두가 도착할 때까지 부디 버텨 주세요'
그땐 체인스톡 호흡을 몰랐었다. 기도문이 이어지는 동안 무호흡이 계속되었고, 호흡이 끊길 때마다 당황한 눈동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했다. 지금은 체인스톡 호흡을 알고 있지만, 같은 상황에 놓이면 여전히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할 것 같다.
다행히도 기도문이 끝날 때 즈음 가족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가 의식은 저하되었지만 다 듣고 계시다는 걸 알기에, 가족들은 환자의 귀에 대고 각자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 인사와 함께 환자를 안심시키는 이야기, 더불어 그 말을 하는 자신을 향한 위로의 말이기도 했다.
아버지의 아들, 딸이라서 행복했고 감사했다고. 우리 가족 모두 잘 지낼 테니 걱정 말고 마음 놓으라고.
아슬아슬하게 호흡과 호흡 사이를 건너갔던 시간은 남겨진 가족들에게나 환자 자신에게 소중한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러니 언젠가 내가 보호자로서 그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부디 무서워 하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