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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에도 성탄절이 와요

30대 눈으로 본 호스피스 병동 이야기

by 미묘


많은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성탄절, 호스피스 병동에도 성탄절이 온다.






나에게 호스피스 병동은 포근한 목화솜이 잔뜩 섞인 분홍색처럼 느껴진다. 매주 입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의 분홍색 가운 때문일까, 차갑게 하얀 병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분홍 느낌이 좋다. 그 분홍이 붉은 색으로 짙어질 때 즈음 크리스마스가 온다.


지금까지 세 군데의 병원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를 이어 왔다. 병원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설렘은 다 똑같았던 것 같다. 긴 간병에 도움이 될 보호자를 위한 선물부터 환자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무실 한쪽에 쌓여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자, 기뻐할 환자와 보호자가 떠올라 덩달아 행복해졌다.


산타할아버지의 손을 빌려 마음을 전하는 선물 타임 말고도 크리스마스의 이벤트는 다양하다.


며칠씩 병원에서 지내며 간병하는 가족들을 위한 소소한 이벤트도 있다. '성탄절' 세 글자로 삼행시 짓기 대회가 열린 해도 있었다.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희망과 좌절을 쓰고 지웠을 환자의 보호자들을 위한 행사였다. 건조하고 길었을 병원 생활에 잠깐씩 주어지는 이벤트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1,2,3등을 뽑아 시상하며 행복하게 떠올릴 추억 하나를 더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추석 때 '한가위'로 삼행시 짓기에 출전했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참여를 독려하고 기회를 많이 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몰입력으로 삼행시 다작을 해 보였다. 민망하게도 뭐든 열심히 하고 보는 기질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병동 로비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봉사로 함께 하는 실내악 연주자들도 있었고, 공부도 잘하는데 음악도 잘하시는 호스피스 센터장님의 기타 연주도 있었다. 모든 병원에서 봐왔던 호스피스 완화의료 의사분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다재다능한 것 같다. 의료진들과 봉사자가 함께 준비한 합창을 하거나, 환자와 가족들의 장기 자랑도 펼쳐진다.


거동이 가능한 환자들은 더 즐겁게 감상하고 참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참여가 어려웠다. 침대를 통째로 로비에 옮겨두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즐기는가 하면, 어쩔 수 없이 병실에 누워서 안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도 한다.


환자 스스로를 잃지 않은 시기에 호스피스에 오길 바란다. 완화 의료로 통증을 조절하며 주어진 삶을 찬란하게 살아내기를, 고통으로 뒤범벅된 하루가 아닌 가족들과 마음을 맞대고 서로 위로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했다. 지나는 계절 안에서 생일이나 명절,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다 알고 있다. 우리는 내년 이 시간을 기약하지 않는다.


호스피스 병동 안에서의 역할이나 처한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우린 똑같은 하루를 살아간다. '지금'을 충분히 느끼며 오롯이 순간에 집중하는 시간을 살고 싶다.






"산타 할아버지,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시간 되시면 호스피스 병동에도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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