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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ink Thru Feb 28. 2021

제주 돌담의 시

틈새가 있어 길이 나 있다는 건 마음을 허락한다는 것.

시커멓게 그을린 사내의 기풍같이

우직하게 버티고 서 있는 제주의 돌담엔

여린 숨구멍이 나 있다.

사내는 차마 먼저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작은 숨구멍을 내어두고 다른 이들의 숨결을 넌지시 허락한다.

그 숨구멍은 길이다.

소리와 숨과 마음과 그리움이 그 틈새의 길을 따라 저 너머로 흘러간다.


빈틈없이 채워진 담 앞에선 슬며시 불어 보낸 마음이 부딪혀 튕겨 나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모든 건 나 있는 길을 통해 흐른다.

단단하고 무심한 모습 안에도 틈이 있는 사람에겐

마음이 흘러 들어간다.

이러한 길이 나 있지 않다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야 하는 마음이

허공에서 갈길을 잃고 이내 사그라든다.


그러니까 제주에선 슬쩍 흘린 마음이

교묘하게 마련해둔 너의 틈을 비집고

시작을 알 수 없는 날숨처럼

하염없이 그리고 고요하게 스며 들어간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doh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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