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엄마, 그리고 행복한 아이. 부모-자녀 소통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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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이는 너무 착실하고 얌전합니다.
지금도 엄마가 ‘가만히 앉아있어!’라고 말하면 한 30분도 가만히 앉아 있는다니까요!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 기특해 죽겠어요!
(자녀 상담을 하러 온 어느 엄마의 자랑)
엄마가 ‘가만히 앉아 있어!’라고 했다고 해서 30분을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는 과연 엄마의 기대대로 ‘엄마의 말을 잘 듣는 기특하고 착한 아이’일까, 아니면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이상한 아이?!’일까? 강의나 특강 중 이와 같은 사례와 질문을 던지는 경우 다들 ‘아이가 이상하죠! 엄마는 더 이상해요!! 어떻게 그렇게 행동합니까?!’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그러나 정답은 ‘몇 살인지에 따라 다르다!’가 정답이다.
즉, 10세를 넘어가는 아이의 경우에는 30분 정도는 부모의 통제에 따라서 가만히 앉아있는 행동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학교 수업이 45분이나 50분 단위로 진행되고 10분 휴식을 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30분은 앉아 있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이가 산만함과 관련된 행동적 문제가 있거나 혹은 부모의 말에 의해 제대로 제어가 되지 않는 아이일 경우가 많다.
반면에 아이가 5세 미만이라면 이는 ‘아주 이상한 행동’이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5세도 안된 아이가 30분씩이나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5세도 되지 않은 아이가 30분 이상 한곳에 집중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다 못해 자기가 좋아하는 뽀로로 동영상을 보는 것도 10분 이상 계속 보기 힘들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엄마가 ‘엄청난 공포의 대상’ 일 가능성이 높다. 엄마가 아이를 지나치게 엄하게 키우거나 혹은 위협적인 말을 자주 사용하여 심한 통제를 가하는 경우일 때에는 아이가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특히 주-양육자인 엄마의 말은 자신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 엄마의 지시라면 “죽을 각오”로 지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정도라면 엄마의 지시에 의해서 30분을 가만히 있는 것이 가능하다.
즉, 아이의 모든 행동을 판단할 경우 반드시 아이의 연령 수준과 그에 따른 지적인 능력 수준을 고려해야만 한다. 이 말이 너무도 당연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이를 고려하는 엄마들이 적다는 것에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많은 교육법이나 유명 강사들이 ‘아이와의 대화’를 강조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잡고, 아이의 문제점과 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논리적 근거와 합리적인 설명을 하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백화점이나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혼낼 때, 엄마가 ‘아이의 어깨를 잡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길게 문제점에 대해서 설명’하는 엄마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엄마들에게 ‘왜 그렇게?’ 혼내는지에 대해서 물으면, ‘아이와 합리적으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맞지 않는 표현이다. 왜냐하면 대화 자체는 중요하지만 대화나 교류의 방법이나 내용을 매우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변인은 바로 아이의 연령이다. 만약 10세 이상의 자녀라고 하면 이와 같은 대화법을 시도해도 된다(하지만 아이가 제대로 듣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자녀가 5세 이하라고 하면, 그렇게 길게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절대 알아듣지 못한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얘기를 오래 나눈 후 남는 것은 엄마의 ‘자기 위로’와 ‘합리적으로 행동했다는 자부심’ 뿐이다.
어떤 엄마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아니에요, 선생님! 저희 애는 알아들어요, 바로 행동이 바뀐다니까요!!’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이는 분명히 행동이 바뀔 것이다. 마치 엄마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하지만 그것은 말의 내용을 진짜로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아이의 입장을 대변하면 다음과 같다. 아이는 엄마의 화난 것 같은 무서운 표정과 (비난하는 듯한) 감정이 가득한 긴~ 장광설을 보면서 ‘아.. 내가 뭔가를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길어지면, ‘아.. 내가 큰 잘못을 했나 보구나, 저렇게 오래 얘기하는 거 보니까!’라고 느끼는 것이 아이의 입장이다. 엄마가 의도하는 대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내용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다.
결국 엄마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던 것이다. ‘아이의 연령 수준에 맞게’ 간단하고 짧게 말하고 지시하는 방법과 ‘아이의 연령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엄마만 만족스러워할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근거와 설명을 활용한 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이다. 과연 아이에게는 어떤 것이 더 명확하고 분명하였을까? 그리고 아이는 어떤 것이 정서적으로 덜 힘들었을까?
이나저나 5세 이하이든, 10세 이상이든 엄마에게 혼내는 과정 자체는 불편한 과정이다. 단지 불편한 정도를 넘어서서 상당한 심리적 고통과 정서적 어려움을 초래하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부모나 엄마들은 ‘당연히 혼날 짓을 했으니까!’ 혼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아이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준이나 내용도 연령별로 다르다. 만약 정말로 아이들의 행동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아동의 연령과 수준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학생에게 수학이나 산수를 가르친다고 가정을 해 보자! 과연 어떤 교수방법이 가장 적절하겠는가? 그것은 당연히 학생의 연령과 수준을 고려하여 접근해야 할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산수를 가르치는 것과 중학생에게 수학을 교육하는 것은 너무 다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는 눈앞에 10개의 귤을 놓고 셈법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중학생은 귤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 이상의 개념적 접근(일/이차 방정식이나 피타고라스의 정리 등)도 말로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초등학교 저학년 혹은 중학생이라고 해도 학생에 따라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소위 ‘우열반’으로 나누는 경우, ‘우수반’의 교육 방식과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반’의 수업 진행은 달라야만 한다.
이 평범하고도 명확한 진리를 부모들은 잘 모른다. 실은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하기가 어렵다. 대신에 아이의 연령과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아이를 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이의 수준을 고려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왜냐하면 엄마들은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며, 이미 너무 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은 노력과 정확한 지식과 정보에 기반한 충분한 공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아이의 연령과 수준에 맞추고자 하는 부모나 엄마의 노력은 항상 효과가 있다. 왜냐하면 아이는 그런 엄마의 태도에 감동받기 때문이다. 나의 주-양육자가 나를 혼내는 것만큼이나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신뢰와 안정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만큼 심리적 평화와 안정을 얻게 된다.
아이에게는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다! 아이의 연령과 수준을 고려하여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하고 편안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들이 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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