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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박사 레오 Apr 20. 2020

사무실의 로빈슨 크루소. 분열성 성격

직장인의 이상(異常) 심리학. Schizoid Personality

Photo by Juan Rojas on Unsplash


직장인의 이상(異常) 심리학. Schizoid Personality


가족을 포함해 누구와도 가까운 관계를 맺기 싫어함

항상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택함

다른 사람과의 성관계에 전혀 혹은 거의 관심이 없음

거의 모든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함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으며 가까운 친구도 없음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에 무관심함

냉담하고 초연한 태도를 보이며무미건조한 감정을 보임 



(발췌 및 인용 From DSM-IV)



1.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


어린 시절 다양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는 동화 전집이라는 것이 있었다. 당시에 책을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전집 형태의 강요되는 책 읽기는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안에서 참 다양한 이야기와 간접 경험들을 했으며, 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였다. 


'로빈슨 크루소'라는 소설은 무역선 선원이었다가 난파되어 무인도에서 홀로 28년 동안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가상의 자서전적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나 관계없이 홀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혼자 만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내용으로서, 요즘 말로 하면 '자연인'에 해당하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반면에 '걸리버 여행기'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이 난파로 인하여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걸리버 여행기라고 하면 떠오르게 되는 소인국과 거인국을 거치면서 전혀 다른 상황에서 자신을 적응시키는 과정들을 묘사하는 내용이다. 나중에는 '라퓨타 섬'이라는 곳과 '후이넘 섬'까지 여행을 하면서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깊이 있는 통찰을 주기 위한 풍자소설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관점에서는 소인국과 대인국에서의 모험 정도가 흥미 있었지, 이후의 여정을 보면서는 '그 정도 되었으면 그냥 집에 있겠네! 참 기운도 좋아?!' 정도의 잔상만이 남을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이 대표적인 소설들은 매우 대비되는 인간의 행동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걸리버 여행기는 항상 새로운 탐험과 도전, 그리고 그 안에서의 적극적인 대응과 문제 해결을 하는 사람을 표상하고 있다. 그에 반하여 로빈슨 크루소는 타인들과의 교류를 단절한 채 스스로 만의 세상을 만들어서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1세기에 이른 현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사무실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걸리버와 로빈슨 크루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혼자 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불편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분열성 성격(Schizoid Personality)이다. 



2. 세상과 나를 분리하다. 


'분열성(Schizoid)'라는 말은 '쪼개어 분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와 같은 종류의 병명을 가진 정신과적 질병들 중 대표적인 것은 최근에는 조현병이라 불리는 정신분열증이다. 이는 영어로는 'Schizophrenia'라고 하는 것으로 '정신(마음 혹은 심리)이 분리되고 쪼개어진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그런데 이는 심리장애를 정신병과 신경증으로 구분할 경우 정신병에 해당하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신병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질병에 해당한다. 이에 반하여 분열성 성격은 기본적으로 현실감이 있으며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이들은 사회적 관계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주요 행동 특징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적 관계나 정서적 교류에 대한 무관심'이다. 대인관계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동기 자체가 적다. 이와 같은 점에서 대인관계를 원하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과 거리를 두는 회피적 성격(Avoident Personality)과는 차이를 보인다. 아예 관심이나 동기 자체가 없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상처가 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는 반면에 즐거움이나 만족도 느끼지 못한다. 거의 전방위적인 대인관계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이다. 


이와 관련된 두 번째 특징은 '혼자에 집중한다'이다. 혼자서 하는 활동을 선호하며, 필요 이상의 대인관계 교류는 굳이 가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혼라이프에 대해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행동 패턴은 대부분의 생활 전반에서 나타난다. 직장에서도 꼭 필요한 활동 이상의 대인관계를 즐기지 않으며, 이는 개인적 관계나 심지어는 가족 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에게 사회적 관계는 불필요한 활동이며,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에 불편감도 없다. 


이와 같은 패턴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결과적인 특징이 '사회적 교류 능력의 결여'이다. 일반적인 사회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대인관계에 필요한 소통이나 교류 능력이 부족하다. 실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굳이 개발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적저한 표현일 것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타인들에게 적절하게, 즉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여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타인들이 자신에게 하는 칭찬이나 비난 등에 대해서 무관심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다. 솔직히 본인 스스로는 이와 같은 패턴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문제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진지하게 개선할 생각도 별로 없다. 



3.  재택근무에 최적화된 인재


최근 코로나19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회사들이 많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충분한 시스템적 및 심리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상당한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단연 돋보이게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분열성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히려 재택근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대인관계를 최소화하고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실제로 직장 등에서는 이들이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다. 이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과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일에 대한 집중력과 효율성도 높은 편이다. 주변의 업무적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일관적이라는 피드백을 받기도 한다. 또한 조직 내 다양한 이슈나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이 할 일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 문화 자체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며 혼자 독립적으로 일하는 개발자나 프로그래머 등이 많은 IT기업이나 게임회사 등에서는 분열성 성격(및 성격장애)을 자주 볼 수 있다. 


대신 이들이 리더가 되는 경우에는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리더는 어쩔 수 없이, 그리고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개입하고 교류하며 관리해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이들은 다른 사람들도 본인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불필요하며 감정적 소모를 일으키는 관계적 측면에는 관심이 없고 업무 중심적으로만 접근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리더로서의 활동에 대해서 '왜 우리에게 무관심한거죠?', '소통과 교류가 부족합니다!', '구성원의 감성관리를 신경쓰지 않는다!'라는 피드백을 받게 되면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갈등이나 대립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더욱 문제가 되기도 한다. 갈등이나 대립이란 결국 양자 혹은 다자간의 문제인데, 이들이 가지고 있는 대인관계 상 기준이나 원칙은 보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인에 대한 분석도 다르게 접근하며, 해결 접근도 상이하다. 사람들 간의 성향 상 다름이나 각 사람의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주장하는 의견이나 감정이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상호적 소통과 이해에 바탕을 둔 갈등해결이 가능하겠는가?!



4. 최소한의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실제 생활 상에서 대인관계 자체가 적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타인과의 교류나 소통에 무관심해도 된다. 굳이 결혼을 해야할 이유도 없으며, 본인이 불편하지 않다면 연애를 할 의무도 없다. 즐거움이나 유쾌함 등과 같은 긍정정서가 부족하면 어떤가, 부정정서도 적게 경험하여 전반적인 심리적 균형만 크게 무너지지 않으면 된다. 단, 이와 같은 전제는 프리랜서로 인하거나 혹은 혼자 일하는 재택근무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일을 하는 경우에만 맞는 얘기이다. 


그런데 생활비는 벌어야 하며,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직장을 다녀야 한다면, 거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대인관계 교류 능력이나 대인관계 스킬은 갖추어야 한다. 만약 조직 내에서 리더가 되었다고 하면, 팀 전체가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해서는 최소한의 다름을 이해하고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할 수는 있어야 한다. 최소한 구성원들이 나와는 어떻게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그들의 기대나 생각을 어느 정도는 맞추어 주어야만 그들의 몰입과 열정을 이끌어 내어 팀의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 비혼으로 남았다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결혼을 했다고 하면 가족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최소한의 역할과 그에 따른 소통 및 교류는 감당해야 한다. 


특히 이들은 비 감정적이며 사교적 활동에 관심이 없지만, 내적으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인이 민감하게 느끼고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내적 감정들은 축적되고 있다. 게다가 축적되는 감정들은 대부분 부정적 감정인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그나마 긍정적 감정들은 이해가 가능하지만, 부정적인 감정들은 납득도 이해도 어렵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은 채 쌓여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추후에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번아웃이 온다던가, 대인관계에서 자꾸 화를 내게 되거나, 어느 날 문득 외로움과 우울이 엄습해 오기도 한다. 지금은 전혀 관심도 없겠지만 장기적 차원에서 준비하거나 대비하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들은 간편 성격장애 구분법에 의거하면, 본인도 힘들지 않으면서 타인도 크게 힘들게 하지는 않는 성격에 해당한다(아래 글 '자신이 힘든 성격과 남을 힘들게 하는 성격' 참조). 그래서 이들은 심리치료나 상담에도 잘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인은 전혀 불편하지 않으며, 타인들의 불평이나 호소에도 무관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코칭이나 상담에 오더라도 보통은 타인(상위 리더나 친구 혹은 배우자 등)의 권유나 강권에 의해 억지로 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본인들은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에 치료가 지속되기도 힘들고, 치료해도 잘 개선되지도 않는 편이다. 


그래서 치료자조차도 이를 문제라고 생각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며, 본인이 뼈저리게 원하지 않는다면 코칭이나 상담을 권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아주 객관적인 정보(예를 들면 심리검사에서 일반적 사람들에 비하여 얼마나 편차를 보이는 지 등)를 기반하여 중립적인 입장에서 설명을 해주기는 한다. 그리고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잠재적인 문제점을 말해준다. 대신에 문제가 발생하면 빨리 다시 오라는 당부도 빼먹지 않는다. 


만약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팀이나 조직의 리더를 맡게 되었다면, 혹은 챙기고 돌보아야 할 가족이 있고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최소한의 관계 및 소통 기술은 학습하고 개발하는 것이 좋다. 그것이 장기적인 차원을 고려할 때 본인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이익이 된다. 그 정도의 노력이면 충분하다. 





본 글과 함께 읽으시면 좋을 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https://brunch.co.kr/@mindclinic/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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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mindclinic/264


https://brunch.co.kr/@mindclinic/266



직장인의 이상(異常) 심리학


#1.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반사회적 성격 (Antisocial Personality)

#2. 팜므파탈의 치명적 매력 : 경계성 성격 (Borderline Personality)

#3. 내가 주인공이다! : 연기성 성격 (Histrionic Personality)

#4. 자신만만함을 넘어서는 거만함 : 자기애적 성격 (Narcissistic Personality)

#5. 거절에 대한 두려움 : 회피성 성격 (Avoident Personality)

#6. 죽음이 우리는 갈라놓을 때까지 : 의존적 성격 (Dependent Personality)

#7.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 : 강박적 성격 (Obsessive/Compulsive Personality)

#8. 네버엔딩 “의심” 스토리 : 편집적 성격 (Paranoid Personality)

#9. 사무실의 로빈슨 크루소 : 분열성 성격 (Schizoid Personality)

#10. 최악의 훼방꾼 : 수동-공격적 성격 (Passive-Aggressive Personality)




https://mindclinic.net/


https://www.personali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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