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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해. 나는 왜 달라야 해?

스트레스 환경이 주는 몸의 시그널



드디어, 20살 어른이 되었다.


예쁜 치마를 입고, 책 두세 권을 품에 안은 채 캠퍼스를 걷는 대학생이 된다. 그러나 한껏 부풀어 있던 마음은 현실 앞에서 좌절을 했다.


사실, 중학생이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진로에 대한 것이었다.


어른들은 내게 몇 가지의 선택지를 주었다.


미용 기술이나 배우던지 아님, 상업 고등학교에 가서 은행에 취직을 하던지 그것도 아님 공장에 취직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도록 미리 설득을 했다.


왜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면 안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마다 교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교복만 보고도 누가 어떤 학교를 가는지 알 수 있는데, 특히 내가 사는 지역은 성적에 따라 3개의 학교가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더욱이 나는 성적을 낮춰서 가고 싶지 않았다.


또한 친한 친구들은 당연히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는데 왜 나만 다르게 선택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이제는 화가 나려고 한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사촌동생들은 공부를 잘하라는 격려와 함께 총명하라고 한약도 먹는데, 왜 나는 자꾸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지 않고 꺾으려고만 하는 걸까.   


“내 인생이잖아.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공부를 하고 싶어.”


그때의 오기는 순간의 치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능 공부만 열심히 한 나에게 대학 등록금이 있을 리가 만무했고, 등록금이 해결된다고 해도 생활비가 또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입학을 해야 하니까 우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울면서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여행을 가기 위해 밤새 아르바이트 하던 사촌동생이 통장을 내밀었다. 지금까지 옥신각신 다투며, 한없이 질투하고 미워했던 그에게 나는 이제와서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간신히 대학 입학을 하게 된다.



집에서 대구에 있는 대학교까지 통학을 하는데 하루에 8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 8시간, 학교 수업이 6~8시간이다.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여의치가 않지만 나는 버스에서  쪽 잠을 자며 어떻게 해서든 버텨내려 애썼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예쁜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고, 책 한가득 큰 가방에 담지만 내 인생을 개척하며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에 기대가 생겼다.


OT, MT는 한 번도 가지 못했지만, 좋은 교수님들의 지원으로 전국 대회에 가서 수상도 했다. 또 교수님들의 추천으로 MBC에서 학교를 방문하는데, 학교 대표로 선정이 되어 미군사령관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런 인정 속에 어려운 환경이지만 어떤 학기는 4.5만점을 받으며 열심히 한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꼭 좋은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쉬운 통행증을 발급하는 것과 같았다.


특히 내게는 유독 간절함과 어려움을 이용하려는 어둠의 손길이 많았다.


이건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다.

선을 넘는 말과 행동에 나는 종종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또 얼음이 되는 나는, 왜 다른 선택지가 없는 건지 아님 선택하지 못하는 건지 내 잘못도 아닌데 내 탓을 한다.


결국 이런 상처들은 내게 있어 사람을 믿지 않게 했고, 사랑을 어려워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표시가 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침묵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없는 낙인이 주는 표시나 그런 엄마를 닮은 인생을 살 거라는 어른들의 말 때문에 아무 일 없는 듯 그저 바다 깊은 곳에 묻어 버린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는 그저 평범하게 남들처럼 보통의 삶을 바랄 뿐이라고. 그렇게 얼음이 되는 것이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카페 아르바이트는 시급이 1,800원~2,000원이다. 하루 8시간씩 한 달 해도 45만 원 정도이고, 정말 생활이 빠듯하다.


취업을 하면 최소 두 배는 벌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취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실습을 가서 열심히 하면 바로 취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실습이 내게는 무척 중요하다. 1시간 일찍 가서 바닥을 쓸고 닦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 맥심 커피를 타서 한 잔씩 나눠드렸다.


‘또 무엇을 해야 할까?’


실수하지 않게, 신중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일을 배우려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고, 목이 잠기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목을 조르는 느낌이지?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창문을 열고 바깥공기를 씌어 본다. 그래도 점점 조여 오는 느낌에 같이 실습하는 오빠에게 숨을 쉴 수가 없다고 말했다.


평소 장난이 많은 나였기에 내 말을 좀처럼 믿지 않았다. 얼굴이 빨개지면서 털썩 자리에 주저앉자 그제서야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 가서 ‘천식’ 진단을 받고, 산소 호흡기를 낀 채 1달을 입원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사회복지사님 도움으로 그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최근 한 달 동안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밤마다 숨이차고, 섹섹 거리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돈이 없었던 나는 사회복지사님께 도움을 요청드렸고, 피검사와 폐활량 검사, X-ray를 했지만 결국 아무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젊은 여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꾀병이라며 핀잔을 주셔서 사회복지사님께 어찌나 죄송하고 민망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구급차를 타고 다시 병원을 갔을 때 내게 사과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오진을 인정하길 바라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그.선생님은 원래 천식이라는 병이 진단 자체가 쉽지 않다며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는 듯 말했다.


물론 선생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잘못하지 않아도 항상 질책을 당하며 살아온 나와 잘못을 하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선생님을 보면서 왜 달라야 하는 건지 하늘에 묻고 싶었다.


존재 자체가 문제인 사람도 있을까.

내가 태어난 것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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