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테루의 <침대차>을 읽고
‘은하’라는 두 글자에서 이 짧은 소설의 이야기는 시작한다. ‘웨스트 익스프레스 긴가’ 로 불리는 ‘은하’는 관광 목적의 특급열차로 유명한 지역에서는 한 시간 넘게 정차하기도 해 아주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는 용도의 열차다. 그 열차 안에서 주인공은 천천히 깨어난 슬픔을 생각한다.
열차를 의미하는 ‘은하’라는 말 이외에도 어둡고 아득한 이미지가 이 소설에 가득하다. 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하면서 전달된다. 죽을 뻔했던 친구는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시간이 지나 어떤 이유에서 죽음을 선택했을까. 부모 없이 손자를 돌보던 할아버지는 손자의 죽음 앞에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까. 영업의 달인 고타니가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은 왜일까.
처음 주인공 ‘나’에 동요되었던 건, 나의 경험과 맞닿아 있어서이다.
‘그때까지 이른바 기계쟁이에 지나지 않았던 나는 입사 이후 팔 년간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영업 분야로 배치되었다.’(144쪽)
이 한 문장을 읽는데도 낯선 부서로 배치되었을 때 당혹스러움과 슬픔이 머릿속에 밀려오는 듯했다. 늘 해오던 일, 앞으로도 할 일이라 생각되었던 일이 아닌 전혀 생각지 못한 어쩌면 나의 성향과도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되었을 때는 회사를 옮긴 것 이상의 충격일 수도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낯선 일을 하게 되며 쉽게 좌절도 하지만 버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적응하게 된다. 주인공도 영업의 달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상사 고타니를 맞이하게 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파트너가 되고 S사와의 최종 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하지만 고타니의 눈동자를 보면서 묘한 허탈감에 휩싸인다. 어쩌면 본인의 모습을 투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그 마음의 밑바닥에는 대단원의 결말에 임하는 억누를 수 없는 흥분’도 숨어있다. 기쁨인지, 속수무책인 적막감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주인공에게 밀려온다. 우리의 삶이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듯.
‘은하’에서는 얼이 빠져 슬퍼 보이는 노인의 눈에 강하게 마음이 끌린다. 울고 있는 노인을 보며 친구 가쓰노리와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노인의 우는 모습은 할아버지의 울음으로 대신 된다.
‘아버지의 정도, 어머니의 정도 모르고, 참 불쌍한 아이였지. 그때 죽었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르지.“(162쪽)
사고로 죽을 뻔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난 가쓰노리가 주오혼센 열차에서 떨어지기까지 십몇 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남겨진 할아버지는 그 아픔을 이렇게 견뎌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떠올려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려주지 않는다. 언뜻 보이는 사람의 눈동자에서 슬픔을 읽는다. 그리고 천천히 기차 안에서 자신의 마음과도 닮은 그 감정들을 ‘은하’로 떠나보내며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쓸쓸하고 아련한 소설 한 편을 읽으니, 읽을 때마다 직전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촘촘히 다시 보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은하‘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세계를 담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