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
오늘의 시 한 편 (81).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모방하는 모과
정끝별
모과 낙과를 생각하며 모과나무 아래를 서성이다
모자란 모과 낙과를 모과나무 뿌리 가까이 모아두는 마음
모과 낙과는 늦된 가을장마에 얼굴을 떨구고
모과 낙과는 흙에 얼굴을 묻고 눈과 귀를 묻고
몇 개나 남았을까, 단풍 든 잎들 뒤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를 헤아려보다
넌 고집 센 고독이구나, 그러니 저만치의 징검돌이겠구
나, 기꺼이 모과에게 손 내밀어보다
모과나무가 떨군 모과 하나를 방에 들여놓고 모과 향기에
부풀던 그 가을을 기억하는 내내
긴 기다림에, 바닥을 친 모과가 멍들었다
마지막 모과가 떨어진 겨울부터
모과잎이 돋고 연분홍 모과꽃이 피고 다시 마지막 모과가
떨어지기까지
모과는 모과라서
모과는 모방하는 이름이라서
끝났으나 끝내지 못한 채
다른 사랑의 후렴을 모방하듯
오늘도 모과나무 아래를 서성이는 마음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몇 개나 남았을까, 단풍 든 잎들 뒤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모과를 헤아려보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는 속담이 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한다는 뜻이다. 화자는 모과의 낙과를 기다린다. 몇 개나 남았을지 헤아려보느라 몇 번이나 모과나무 근처를 맴돌았을까. 그 노력이 보이는 것 같다. ‘몇 개나 남았을까’를 헤아려 본다는 것은 화자 이외에 다른 누군가도 모과의 낙과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지런한 사람이 주워갈 모과는 노력한 사람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위하게 얻은 모과는 진한 향기로 화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