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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국

채길우

by 민휴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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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한 편 (83).     


매일 시 한 편씩 올리다 보면, 금방 한 권의 책을 읽게 되겠지요?

첫 번째 책은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창비-2024)입니다.      



    

미역국  

   

채길우    


      

기계가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쇳물을 붓고

열기를 담가둔 거푸집의 포장이 풀리자

새로 태엽 감긴 작은 로봇이

잡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한다.  

 

  

일그러진 복제물을 품에 안으며

기계는 설계를 닮기 위해

하얗고 투명한 소리와 액체를 짜내고

로봇도 톱니를 맞물리며 기계를 따른다.  

 

  

서로를 연결해주던 전선이 뽑히고

콘센트 구멍은 막혀서

기계와 로봇은 분리된 채 각자의

서로 다른 주기와 임무를 가지게 된다.    

 


한번 정해진 방향을 거슬러 되감을 수 없는 태엽이

고장나거나 완전히 풀릴 때까지

로봇은 짜고 비린 윤활유로 스스로를 적셔가며 기계처럼

크고 살아 있는 제품이 되기 위한 회로를 엮어갈 것이다.  


   

잠시 작동을 멈춘 로봇이 절전 상태로 대기하는 사이

기계는 지치고 삐걱거리는 엔진을 식히기 위해

누런 기름 사이에 떠 있는 미지근하고 미끄러운

석유 한덩이를 녹슨 지렛대로 건져 먹는다.




         

* 마음을 붙잡은 한 문장


석유 한덩이를 녹슨 지렛대로 건져 먹는다   


  

(제목은 미역국인데 미역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나오고,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 앞서다 뒤를 선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시를 만나면, 복잡다단하고, 불확실한 삶을 말하려나 치부해 버린다. 더 깊이 톺아보고 사유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좋아하는 미역국이 예전의 미역국이 아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역국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시를 쓰기도 참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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