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여행

조건없는 사랑

by 로사 권민희

금토일월 3박 4일간의 울산 여행에서 아빠는 음식을 정말 맛있게 드셨다. 5월 7일 정읍에서 첫 암 진단을 받고 서울 병원으로 모시고 와서 10여 일을 입원하여 꽤 오랜 금식, 검사와 회복의 시간을 보내시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암센터에서 위암 4기 폐, 간, 림프 전이로 수술 불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치료 차원이 아닌 항암 검사, 3개월 시한부에 대한 관점을 듣고 내가 한 첫 번째 액션은 아빠와 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병원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죽음이 어우러지도록 하려면 존재 전체로 나의 선택을 믿는 태도를 배워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 배워가고 탐사하는 영역. 호기심보다는 두려움이 크게 느껴졌다.

이전의 10일은 죽음도 삶의 한 측면으로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행복한 의식으로 고통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아빠의 삶을 존귀하게 마무리하실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는데 전석 매진, 딱 한자리가 있었고 나는 입석으로 울산까지 갔다. 도착해서 아빠의 요청으로 불고기 반상을 룸서비스로 시켜서 먹고, 우리는 정신을 잃듯 쓰러져 잠들었다. 하지만 밤새 아빠는 아팠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 우리는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도 싶었다. 비 오는 밤이었다. 두려운 와중에도 잠이 왔다. 그간 지쳤던 몸은 계속 잠을 잤다.

토요일에 두 사람은 잘 깨어나 코스장에 나갔고, 의지 미니코스와 용서하기 미니코스를 시작했다. 삶을 돌아보고 정돈하는 시간들이 주어졌다. 코스에서 만난 벗들과의 연결은 아버지에게 큰 기쁨의 시간이었다. 그날 저녁 전복 갈비찜을 정말 맛있게 드셨다.

일요일에 용서하기까지 잘 마무리를 하고 프로그램을 이어나갔다. 아버지의 열의에 감사한 이틀이었다. 우리 부녀는 2013년부터 미국을 함께 5번 횡단하며 아봐타 코스를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 싫어하던 사람이었던 아빠와의 화해의 여정을 만들었던 6년여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시기를 너무나 눈 부시게 만들어나가고 있다.

코스 마지막 날이던 일요일 저녁에는 울산의 맛집 봉창이 칼국수와 김치만두를 함께 먹었고, 월요일 아침에는 현대호텔의 조식 뷔페를 여유롭게 즐겼다. 그리고는 일산지 해변에 나가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점심은 현백에서 사 온 전복죽을 든든하게 먹고 멋진 날씨를 즐기며 KTX를 타고 서울로 왔다.

열차에서 아버지는 한숨도 안 주무시고 유쾌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울산에서 이동하는 내내 택시 기사님과도 이야기를 건넸고, 누구와도 친구가 되었다. 오늘 하루 최고의 컨디션으로 지팡이도 없이 편의점에 다녀오시는 모습까지 만났다. 병원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힘 있는 아빠를 만나서 너무나 경이로웠던 오늘이었다.

저녁에는 나의 집으로 와서 완도산 톳을 넣어 잡곡밥을 지었고, 황탯국을 끓여 큰고모가 담가주신 김치와 함께 먹었다.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맛있게 건강하게 지내려고 한다. 누구나 병을 다루는 방법이 다르고, 삶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훈련하고 있을 것이다. 고모할머니는 저녁에 전화를 걸어 중환자를 데리고 먼 곳을 다녀온 나를 나무랐다. 그 마음도 사랑이리라.

우리 부녀는 일어난 일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힘듦 벅참 슬픔도 기쁨도 즐거움도 기꺼이 맛보려고 한다. 아빠가 내게 준 조건 없는 사랑을 비로소 맛볼 수 있어 귀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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