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난민으로 살기로 했다.
결혼하고 11년간 해외이사 포함 6번의 이사를 준비 중이다.
평수도 다양하다. 남편이 살고 있던 6평 원룸에서 시작해 14,24,35,19,29평.
이미 결혼하기 전부터 우리는 평생 전세난민의 삶을 살 것이라 다짐했다.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직업군도 아니고 이동이 잦다.
IMF때 시아버님 사업이 직격타를 맞았다. 유복하게 자라 온 남편인데 대학을 10년 동안 휴학해 일하고 등록금 마련하고 빚 갚으며 간신히 졸업했다.
‘빚’이라는 단어 자체에 치를 떠는 남편이다. 나 역시 부모님의 제2 공장이 원인 모를 화재로 한 순간에 사라지고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엄청난 빚을 남긴 것을 보았다.
이런 둘이 만났기에 빚을 지지 않고 가지고 있는 재정 안에서 분수에 맞게 사는 삶, 자족하는 삶을 연습하며 지내고 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닌 걸 알기에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자는 마음으로 나그네 삶을 선택했다.
유목민처럼 그때그때 우리에게 허락된 집을 찾아다닌다. 이사 몇 번 해보니 우리 가족에게 미니멀라이프가 절실한 걸 깨달았다.
이사 갈 때마다 많은 짐들은 부담이 된다.
지금 세상에 아이 넷을 키우면서 어떻게 매번 이사 다니며 지내냐는 어르신들의 걱정 어린 조언을 듣기도 한다.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면 이제 좀 그만하고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환경을 탓하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려고 노력한다.
4남매와 함께 생활할 집을 찾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 날을 집 찾기에 몰두한다.
이번에 이사 할 지역은 지금 사는 곳보다 더 비싼 동네라 같은 가격으로 갈만 한 집이 딱 하나 있었다.
주말부부로 지내는 남편 쉬는 날 1시간 넘게 달려 집을 보러 다녀왔다.
아이가 많아 층간소음이 우려가 되어 1층집을 찾고 있는데 구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조건에 맞고 내가 원하던 작은 평수였다. 지금 29평에 살고 있는데 청소할 때마다 작은 집이 그리웠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긴 했지만 사용하는 공간은 정해져 있다. 아이가 많으면 꼭 큰 집에서 살아야 할까? 다른 방에 있는 아이를 부르려면 큰 소리로 불러야 한다. 서로의 목소리가 잘 안 들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때도 있다.
다시 작은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 부대끼며 지내는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대가 되었다.
계약이 잘 진행되길 바랐지만 결국 안 되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또 집을 알아봐야 한다니 조금은 귀찮게 느껴졌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겠다. 초심을 기억하며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다짐해 본다.
이사 가기 전에 더욱 불필요한 짐들을 줄이며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고 미니멀라이프를 하면 작은 집에서도 여섯 식구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빚지지 않는 삶. 가진 것에 만족해하며 더 많이 소유하지 않으려는 삶. 여러모로 마음 편해지는 미니멀라이프 계속 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