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나는 돈이 별로 없었다.
어찌어찌 결혼을 해서 첫 아이를 낳았는데, 교육은커녕 당장 분유값, 기저귀값, 분기별로 사입혀야 했던 아이 내복값에 벌벌 떨었다. 마침 그 시절은 자녀 한명을 키우는데 드는 돈이 억 소리가 난다며 비용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환산해 뉴스에서 떠들던 시대였다.
임신을 하자마자 육아카페에 가입을 했고, 그곳에서 초점책이니 영유아 그림책이니 하는 것들을 처음 알았다. 신세계였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까 할 정도로 모든걸 인터넷에 묻고 서치했다. 아마 지금의 마이웨이한 육아관은 이미 지지고볶고 해볼만큼 해본 뒤 체득한 것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발견한 어떤 문장.
'미취학 때 한글책 2천 권을 읽어주면 중고등에 가서는 학원을 안보내도 공부를 따라간다.'
설마 하며 넘길수도 있었겠지만 그때는 솔깃했다. 그리고 나는 정말로 아이와 그걸 실현했다.
그것이 엄마표 책육아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책을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책을 좋아하도록 만들었다.
책과 멀어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단순히 학교가서 공부로 발목잡히지 않았으면. 잘할 것도 없고, 그저 하고싶은 게 생겼을때 공부로 좌절되지만 않았으면 싶었다.
정말로 학원비를 절약하게 된다면 그것도 좋고.
어차피 잠도 없는 아이라 매일밤 잠자리독서를 해주기에 딱 좋았다. 다섯살 전까지는 기관에도 보내지 않았으므로 엄마인 나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도 많았다. 잠 없고 예민한 아이와 온종일 붙어있자니 육아가 힘들었고, 차라리 책이라도 읽어주면 목은 좀 아파도 그게 덜 힘들게 놀아주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매일 독서를 해주고, 주기적으로 새책을 구해줬다. 다른 아이들이 대부분 잘본다는 책은 거의 다 보여줬고, 도서관에도 데려갔다. 책들로 징검다리를 만들고 놀든 집을 만들든 원한다면 바닥에라도 깔아줬고, 비슷한 내용의 책들만 뽑아 연계독서도 해줬다. 엄마표로 독후활동도 해줬으며, 집에 있는 책들에 싫증을 내면 책장을 뒤엎어 책의 위치들을 바꿔주기도 했다.
어쨌든 사다주고 빌려다주고 안보면 처분하고 아주 쌩난리를 쳤다. 그래서 이미 일곱 살에 이천권은 훌쩍 넘겼으리라 생각한다. 남들 영어유치원에 사고력수학학원 다닐 때 나는 비학군지에서 이렇게 고군분투로 마이웨이 중이었다. (어차피 우리동네에서 영어유치원을 가려면 차를 십분이상 타고 옆동네인 학군지에 가야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갔고, 첫 상담 때 담임 선생님께 들었던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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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선행시키지 마세요." 였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