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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29. 2019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는  과연 동시에 불가능한가

17세기 독일낭만주의 전통에서 찾은 '낭만주의자'에 관해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동시에 갖는 것은 불가능한가?

1.

낭만주의자하면 이상만 바라고 백면서생처럼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람이거나 혹은 카사블랑카처럼 연애나 사랑에 목매고 죽자고 덤비는 사람처럼 격하된 요즘, 다시 낭만주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의 필명은 '낭만민네이션'인데,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었기는 하다. 대학에 들어가면 어떻게 생활해야지할 때 선배형이 들려준 '대학은 낭만을 배우는 곳이야'라고 했던 사건. 그 사건 이후에 나의 대학시절은 낭만으로 가득찼었고 학점은 망해버린 가련한 운명을 맞이했어야 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은 낭만이라는 것이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가?이다. 낭만이 없는 사람은 곧 한계를 맞이하거나, 매력이 없어지거나, 미래에 대한 성장동력을 잃기가 일쑤였다. 너무 비약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낭만주의 전통의 기원으로 들어가보면 왜 그런지 이해가 갈 수도 있다.


2.

17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초기 낭만주의는 그 멤버들이 매우 화려한데 셸링이나 노발리스, 헤르더, 슐하이마허가 있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으로는 헤겔이 있다. 낭만주의 전통은 사실 현대에 와서 초기의 업적이나 정의가 기술된 것이여서 지금 검색해보면 '이상이 지나친, 현실을 부정하고, 신문물에 반대하여, 과학을 뒤로하고' 등등과 '미술적 사조 및 시적 풍조'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것은 겉표면만 본 것이다. 17세기 독일에서 시작된 초기 낭만주의와 18세기 전 유럽으로 퍼진 중기 낭만주의 그리고 19세기 이후 현재 우리가 정의하는 낭만주의는 그 격이 다르다. 물론 17세기 초기의 도전이 실패했기때문에 18세기를 지나면서 변질되었다는 말을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3.

17세기 독일 낭만주의 전통은 한 마디로 이상과 현실을 같은 테이블에 놓고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인간을 새롭게 정의해야 했던 16세기 르네상스 이후 유럽사회에서는 여러가지 인간에 대한 해석들이 나타났다. 과학으로 점철된 계몽주의에서는 생물학적인 인간과 우주론적 인간관이 득세하였으며 영국에서는 이미 과학으로 인한 여러가지 발명품들과 이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신으로 부터 독립한 인간의 영혼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매우 급진적으로 인간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하는 시기였다. 전통과 현대의 중간에 자리한 낭만주의자들은 이분법적인 사고를 배격시하고 우리의 영혼의 중첩점을 찾으려고 했다. 그리고 시작했던 작업이 바로 인간의 이상과 현실의 변화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는 도식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러한 도식에 어느정도 성공한 지점이 바로 헤겔의 '정신현상학'이었다. 우리의 정신이 현상까지 다녀가는 시간동안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사물로 발전해서 시대정신을 만들고 세상을 움직여가는가?에 대한 도식이었다. 물론 헤겔의 도식은 요즘은 독일 관념론이나 의식화정도로 폄하되지만 그 당시 과거와 현실을 이으면서도 하늘과 땅을 잇는 도식으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었다.


4.

옛날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이 부자는 재산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는데, 그 아들이 영리하지가 못해서 이 재산을 다 탕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는 한 꾀를 낸다. "내가 이 모든 재산을 너에게 줄테니, 그 전에 너는 이 세상에 가자 지혜로운 사람에게 찾아가 지혜를 배워와야 한다!"라고 말하며 부자는 아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현자에게 보냈다. 몇년을 찾아다니던 끝에 아들은 현자가 살고 있는 성에 도착한다. 현자의 성은 말그대로 온 역사의 지식창고였으며 진귀한 보물들과 값비싼 그림들이 즐비했다. 이윽고, 현자를 찾아간 아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현자에게 이 세상에 가장 귀한 지혜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현자는 숫가락에 기름을 덜어주면서 말했다. "만약 당신이 이 숫가락에 있는 기름을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지 않고 이 성을 다 돌고 온다면 내가 지혜를 알려주겠소! 기간은 딱 1일이요!" 현자의 말을 들은 아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성안을 돌았다. 덜덜 떨리는 걸음으로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성 이곳저곳을 돌아왔다. 다행히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현자를 만난 아들은 기쁜 마음으로 지혜를 배우기를 원했다. 그랬더니 현자가 "아니 그런데, 이 성에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보물과 그림들이 많은데 그것들은 보지 못하고 온 것이요? 다시 하루를 줄테니 시장이며 도서관이며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오시오!"라고 말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아들은 현자의 말에 순순히 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자의 말대로 이곳저곳을 샅샅히 돌아다미면서 현자의 말대로 이 세상의 이렇게나 진귀하고 새로운 것들이, 오묘하고 신기한 것들이 많은지 몰랐다. 아들은 현자가 역시 맞았다며 하루동안 도서관이며 미술관이면 시장이며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즐기는 것들을 보고왔다. 그리고 마침내 하루가 지나고 현자 앞에 도착했다.


"현자님! 이렇게 세상에 신기한 것들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시장이며 도서관이며 제가 너무 무지했습니다. 정말 저의 무지를 깨워주시고 저를 지혜롭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요. 오히려 이제 배울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랬더니 현자는 웃으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그런데 숟가락 위의 기름은 다 어디갔소?


5.

위의 이야기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를 나름대로 각색한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이 세상의 지혜는 '숟가락의 기름을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세상의 구서구석을 돌아보는 것' 다시 말하면 '자신이 가진 사명과 이상과 목표를 잃지 않으면서 이 세상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에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낭만주의자들의 방향성은 이러한지 모른다. 자신이 가진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굿굿히 발을 딛고 한발짝이라고 걸어가는 것 말이다.


6.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시도 쓰고 과학도 공부했다. 그리고 최신의 이론들이 하나로 집대성한 이론들을 만들어냈다. 당시 생철학이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만들어낸 이론은 '생기론적 범신론'이었다. 생기론이라는 것은 우리의 몸이 만들어지는 진화의 방식이라면 범신론은 모든 과정, 사물, 시간에 신의 영험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영혼은 모든 사물과 육체에 있고 그것이 언제나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들의 전통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보이는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 이루어지는 생명의 운동과 영혼의 흐름까지 보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유행했던 드래곤볼의 '스카우터'처럼 같은 것들 보더라도 입체적인 관점에게 보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겔은 정신의 모든 현상 속에서 구현된다고 보았고, 그 구현되는 정신의 요체는 결국 법으로 귀결된다고 말했다. 헤겔의 법철학은 현대 법치주의를 구성하는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7.

현대의 낭만주의자는 누가 있을까? 누구도 낭만주의 전통의 기원을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낭만주의자'가 된 이상 낭만주의의 전통을 찾아서 헤메는 중이다. 스웨덴의 위대한 정치가였던 '비그포르스'는 내가 아는 한 현대의 위대한 낭만주의자이다. 그를 통해서 100년전 스웨덴은 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기아에 허덕이던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과학을 발전시켜 사회가 새롭게 혁신할 수 있는 제도들을 만들어냈다. 여러가지 할 이야기 많지만 비그포르스가 낭만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17세전까지 좋아했던 뤼드베리의 이상주의적 시적 혁명과 함께 18살때부터 열심히 토론을 즐겼던 급진적 현실주의자들이 모여있는 룬드대학의 전통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조합에서 비그포르스는 인간과 공동체의 회복에 대한 이상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현실의 가난과 부정의, 실업의 문제를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가기 시작했고, 결론적으로1938년 노사협의를 타결시키면서 위대한 국가로의 발돋움을 하게 된다. 그가 이러한 이상을 꿈꾸면서 국회에 내 노았더 사민당의 강령은 그의 나이 26세때였다. 이상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하는 글과 사건들은 언제나 눈물이 나게 되는 것 같다. 역사의 한 획을 긋기 때문이다.


8.

나는 낭만주의자이다. 아직도 인간은 이상을 추고하면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존재라고 믿는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의 힘을 믿는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변화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사회의 구조상 악한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들에게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업과 경제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기에 '발전과 개발'에 대한 고민과 행정에 대한 문제점들을 정책으로 풀고 싶어한다. 꾸준히 철학과 이상을 실현시킬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지만 현실을 바꾸기 위한 실정법과 근로기준법, 최저임금과 기본소득을 공부한다. 물론 이 두가지 만나는 지점 어딘가에서 반드시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낭만주의자이다. 그래서 이름하여 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아이디얼리스틱 리얼리스트'라고 부른다. 고로,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갖는 것은 가능하다. 당신이 낭만주의자라면.


9.

한나아렌트의 서술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누군가 물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어떤 관계인가요?" 또한 "역사가 이렇게 연속적인데 무엇을 할 수 있나요?" 그러자 한나아렌트는 과거의 현재로 틈임해오지 못하게 하고 미래의 기대가 우리의 현재를 훔쳐가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으로 살 수 있다. 왜냐하면, 과거와 미래 사이에 현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사이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1. 생기론적 범신론

https://brunch.co.kr/@minnation/781


2. 낭만주의 철학

https://brunch.co.kr/@minnation/776


3. 비그포르스

https://brunch.co.kr/@minnation/838


4. 정치의 발견

https://brunch.co.kr/@minnation/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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