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책방, 내가 좋아하는 책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할머니댁에 가면 세로로 쓰여진 옛날 책들이 몇 권 있었는데, 한자가 많이 쓰여있어 읽을 줄도 모르면서 그 옛날 책이 보물같이 귀해보였다. 그래서 가져온 한 권의 책은 아직도 내 책장에 꽂혔있다. 이모네 집에 한 벽면을 채우고 있는 위인전집이 너무 부러웠고, 집으로 가져갈 수 없으니 이모집에서 그 책 내용을 모조리 나에게 집어 넣고 가겠다는 의지로 책장 앞에 앉아 읽었다.
나의 책 사랑은 방송 작가가 된 후에도 계속 됐다. <KBS TV책을 보다>나 <TVN 비밀 독서단>과 같은 책 소개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책 소개 프로그램은 그리 많지 않았고, 방송은 서로 끌어주며 프로그램을 옮겨 다니는데 책 프로그램으로 끌어줄 나의 지인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작가는 나처럼 책을 좋아해서 그런 자리는 치열했고, 한번 그 프로그램을 차지하면 잘 그만두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찮게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책’과 관련된 방송이 들어왔다. <KBS해볼만한 아침> 프로그램으로 경제프로그램이지만 그 프로그램에 <동네서점>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나는 '프로그램을 통째로 맞는 메인을 하느냐, 동네서점 코너만 하느냐'하는 기로에 섰다. 프로그램을 통째로 맡으면 방송 전날 밤을 새고, 방송날 새벽같이 방송국에가서 방송을 해야 했다. 나는 아이들도 케어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책방을 소개할 수 있는<동네서점>을 선택했다. 이 코너가 나에게는 정말 쉬었던 이유가 우리 가족은 아이들과 여행을 가면 항상 그 지역의 동네서점을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에게는 지금까지 서치해 둔 무궁무진한 자료가 있었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하며 특별한 동네서점을 찾으면 우리의 여행목록에 새로이 넣을 수 있었다.
내가 방송에서 소개한 책방은 다마스에 책을 싣고 옮겨다니며 제주 바다가 보이는 곳, 숲이 울창한 곳에서 책을 파는 책방, 주인은 없지만 동네 아이들이 책방 주인 역할을 하며 청소하고,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알아서 결제해서 책을 사가는 책방, 1934년에 문을 열어 일제강점기부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모두 겪은 곳으로 고서가 가득한 책방, 인쇄물, 판촉물, 제빵 재료, 포장자재 등을 파는 방산시장 안 숨겨져 있는 보물같은 책방 등이다. 책방을 유지하기 위한 주인장들의 노력부터 책을 사랑하는 손님들과 책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또한 여름방학에는 특집 방송도 준비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세금내는 아이들> 책을 쓰신 옥효진 선생님을 섭외해서 아이들 경제 교육에 대한 방송을 했다. 옥효진 선생님은 예전에 유퀴즈에도 출연했던 분으로 반을 하나의 나라로 설정해서 아이들에게 직업을 부여하고, 월급도 주고 세금도 떼면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르쳐주는 분으로 유명하다. <세금내는 아이들> <법만드는 아이들> 이라는 책 등을 쓰셨다. 예전에 <돈의 법칙>때 했던 녹화도 생각나고,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자 작가님과 함께하니 너무 즐거웠다.
우리 아이들은 옥효진 선생님과 녹화한다고 하니 본인들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녹화가 주말이어서 내가 먼저 녹화장에서 녹화를 하고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달려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일찍 끝나 내가 선생님 사인만 받아 아이들에게 건네줘야 했다. 아이들은 그 사인을 보고 또보며 직접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내가 좋아하던 <동네서점> 코너는 경제프로그램과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오래하지 못하고 폐지됐다. 나의 짝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고, 나는 또다시 방송사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이렇게 즐거운 프로그램을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