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타임 번외 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여러분이 멈추지 않으면
저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지옥문 앞일지라도 꼭 다시
따라가서 데려오겠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낭독한 선언과 노래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저는 2023년 9월부터의 치료 과정을 올해 3월부터 브런치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일요일 연재만큼은 어떤 상황에도 놓치지 않았고 평일에도 중간중간 글을 써 내려가며 호흡을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5월부터 다시 통증 치료를 이어가는 데다, 가끔은 통증으로 인한 집중력이 흐트러지네요.
틈나는 대로 글을 쓰긴 할 거랍니다. : )
오늘은 그동안 이어온 과거 치료기록이 아닌 바로 어제 기록, 잠깐,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려 합니다.
저뿐 아니라 많은 통증 환자분들과 암 환우분들이 치유의 길 위에서 다시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현재의 기록을 한 장면 꺼내어 올립니다.
2025년 7월 30일 수요일.
어제 행복한 H병원 로비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치료로 지친 몸과 마음에 잠깐 스며든 멜로디는 통증과 통증 사이를 이어주는 한 줄기 숨결 같았다.
원장님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벌써 8년 정도 뵙고 있지만 어쩌면 한결같이 저리도 소년 같으실까.
지옥문 앞일지라도 끌고 데리고 오겠다는 그 고백에 온몸이 전율했다.
“원장님 같은 의사라면 지옥의 문턱까지 갈 일이 없겠죠.”
외래 진료를 오전에 잡고, 식사 후 약 한 시간 동안 온전히 힐링의 시간을 보냈다.
원장님과 환우분들, 관리자 및 간호 선생님들까지 모두 함께 웃으며 행복을 나누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건, 자신이 최고임을 과시하지 않는 원장님의 따뜻한 진심이었다.
그 진심 앞에서 오히려 더 깊은 전문성과 품격이 느껴진다.
나는 원장님께 치료만 받는 게 아니라 늘 ‘부족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배우고 있다.
모른다고 말해도 괜찮고,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청하면 되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다는 것을.
나는 그동안 부족함을 숨겨야만 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아픈 내 모습, 모르는 걸 묻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 애써 괜찮은 척 버텨왔다.
그러나 이 용기 덕분에 더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다.
아픔을 마주하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
아니 지금도 배우고 있다.
오늘도 부족한 채로 배우고, 부족한 채로 나아가보려 한다.
지구에서 가장 행보칸 김정훈 원장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우린 혼자가 아닙니다
그대 폭풍 속을 걷고 있을 때
비바람을 마주해야 할 때
불빛조차 보이지 않아도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두려움 앞에서 하늘을 보아요
외로운 그대여 걱정 마요
꿈꾸는 그 길을 또 걷고 걸어요
그대 혼자 걷지 않을 거예요.
같은 정도의 통증이라도 그때의 심리 상태와 상황, 그리고 의미 부여에 따라 전혀 다른 체험이 되는 것 같다.
작년에는 언제 끝날까!
라는 두려움과 함께 고통을 느꼈지만
올해는 이건 지나갈 거야!라는 믿음이 조금 더 자리 잡았다.
통증도 낯설던 시절에는 훨씬 크게 느껴졌지만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익숙함이 생기고 감정의 파도는 잦아든다.
무뎌진 게 아니고 몸과 마음이 협력해 적응한 결과다.
마치 주치의 선생님과 호흡을 맞추듯 말이다.
또 같은 고통이라도 이름을 다르게 부를 수 있다.
작년의 통증은 절망이었을지 몰라도
올해의 통증은 치유의 과정처럼 느껴진다.
같은 자극이라도 그 고통에 붙이는 해석과 의미가
달라지면 체험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작년과 올해 통증의 위치는 다를지라도 어쩌면 같은 고통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같은 고통도 다르게 느껴진다.
오늘은 어제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자.
크지 않아도 된다.
한 발자국이면 충분하다.
어제보다 조금 덜 불편하면 그것도 회복이고
어제보다 조금 더 웃을 수 있다면 그것도 성장이다.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작은 걸음으로도 앞으로 간다.
그리고 그 작은 걸음들이 쌓여 나 자신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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