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대신 걷던 시간

2차 항암 후 드디어 집밖으로 한 발짝 내딛었다

by Mirmamang

2차 항암 후 하루가 지나자 머리카락이 빠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머리에 제모크림을 바른 것처럼 머리카락은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갔고 눈썹도 팔다리의 솜털도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머리카락이 빠져나가는 속도만큼 밖으로 나가 조금이라도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항암 후 일주일 정도 지나니 조금씩 기운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마음은 무색하고 내 방에서 주방까지 내려오는 계단을 한 번에 내려올 수가 없었다. 100세 노인이 되었을 때의 체험을 미리 하는 것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기운이 없고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내려와 밥을 먹고자 했지만 이미 몸은 지쳤고, 설상가상으로 입안에 잔뜩 생긴 수포로 인하여 음식의 맛과 냄새는 내게 또 다른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 식탁에는 나를 기다리는 남편과 세 아이들이 앉아있었고 나로 인하여 그들의 식사 시간을 망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던히 애를 쓰고 참아내려 했지만 항암 후 열흘간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머리카락 한 올 남아있지 않게 되자 나는 더욱 밖으로 나가는 시간을 두려워했고, 혹시나 누군가를 만날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몸을 숨기는 소라게처럼 더더욱 집안으로 움츠러갔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아빠, 딸 집에 좀 오세요” 해도 3시간의 장거리 운전 힘들다며 두어 번 들르신 게 다였던 우리 아빠.


그런 아빠가 내가 항암 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고, 바뀌어가는 초라한 내 모습이 싫어져 마당조차 나가지 않게 되었을 때, 매번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올라오셨다. 그리고 늘 같은 말을 하셨다.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어. 어디 안 아픈 사람이 있냐? 사람 마주치기 싫으면 새벽 동틀 때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걸으며 해의 기운을 받아. 조금이라도 걸어야 해. 근육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어.”


그 말이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해서 나는 억지로라도 걷기 시작했다.

아빠는 나의 2호기에게 "엄마한테 마당에 나가자고 얘기해. 매일 숙제하듯이 마당에 나가서 엄마손 잡고 한 바퀴만 돌고 들어와, "라며 손가락 약속을 했다.


처음엔 발을 질질 끌며 한 바퀴,

그러다 두 바퀴, 세 바퀴…

너무도 당연하고 쉬웠던 걷기가 이렇게 큰 도전이 되게 만드는 암이라는 병, 참 대단하다.


하지만 나름 깨달은 것도 있다.


내가 무너지면, 내 곁의 누군가도 무너진다.


그래서 속으로 암에게 말했다.

“내게 있는 동안, 사이좋게 잘 지내다… 때 되면 떠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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