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

by 박 혜리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선 내게 큰 소리로 우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은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친동생인 큰외삼촌이 돌아가신 날이었는데 살던 집이 무너져 남의 빈집에 이사를 하고 난 얼마 후에 외삼촌의 아들인 그 아이가 우리 집으로 왔다. 그 아이의 엄마는 서른을 넘긴 청상의 과부가 되어 딸 하나를 데리고 떠나고 그 아이 혼자 남겨졌는데 이복동생인 외삼촌의 혼삿길이 막힐 것을 염려한 외할머니께서 엄마의 손에 얼마의 돈을 쥐어주고는 우리 집으로 그 아이를 보냈다. 속눈썹이 길고 썹이 짙은 그 아이를 저녁이면 나는 우물가에서 목욕을 시켰는데 흰쌀밥을 남동생과 그 아이에게만 떠주어 군입 하나가 더는 것 같아 나는 미워하기도 하였다. 그 아이가 우리 집으로 오고 나서 일 년이 넘었을 때 엄마의 사촌오빠 되시는 분이 우리 집으로 오셨는데 궁색한 우리 집 사정을 잘 아시는지 그분은 외할머니를 뭐라 하시면서 다시 그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 아이가 떠나던 날 그사이에 정이 들었는지 소죽을 끓이는 아궁이 앞에서 나는 울었는데 얼마 후에 나하고 여섯 살쯤 차이나는 그 아이가 고아원에 보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나에게 들려온 소식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 아이가 퇴소를 하여 후견인의 도움으로 받은 얼마의 돈을 함께 방을 얻은 형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이었다. 곳을 잃은 그 아이는 외삼촌을 찾아가서 며칠을 머무르다 갓 결혼한 내 집으로 와서 삼일을 머물고는 시골의 혼자 사시는 엄마 집으로 내려갔다. 그 아이를 보낼 때 울던 엄마는 한 번도 그 아이 면회를 간 적이 없었는데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데리고 있기 힘들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방 두 칸 중 한 칸을 차지한 여동생을 데리고 있었던 나는 며칠마저 함께 있지 못하고 불평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나는 힘들면 외삼촌 집에 보내라며 전화를 끊었다.


외삼촌이 세상을 떠나신 날 눈물지으며 목놓아 울던 엄마는 여든을 넘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는 부모가 세상을 떠났는데 목에 밥을 넘겨도 되겠냐며 우셨고 아흔을 넘기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옛날 일은 잊으신 듯 섦게 울었다. 그럴 때마다 큰 부조를 주저 없이 하던 엄마는 매일 그 아이에게 고기반찬을 해줄 수 없다는 말을 하였는데 한 달을 쉬지 않고 그것을 먹인다 한들 지금까지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란 그 아이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어 나는 이후로 엄마가 눈물을 보이면 의심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엄마의 집을 나온 그 아이의 소식을 한번 듣고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부모를 잃는 것은 돌아갈 고향을 잃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며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홀로 세상을 견뎠을 그 아이의 눈물은 얼마만큼이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나의 외사촌인 그 아이가 꿋꿋하게 자라서 못난 어른들을 용서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기를 바라며 언젠가 그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지어 대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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