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한 지 한 달 반쯤이나 되었을까? 두 번의 병원 이동이 있었고, 통원 치료로 여기저기 다니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아이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코 묻은 소매 자락을 봐서 더 마음이 쓰였던 건 사실이지만 그동안 걱정이 안 된 것은 아니었다. 엄마로서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더더욱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살았다. 통화와 문자로 수시로 소통하며 잘 있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늘 확인했다. 하지만 휴대전화기 너머로 시어머니와 남편이 전해주던 '잘 지낸다'는 아이들 소식은 그저 환자 보호용 눈가림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였으니 그들을 탓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알았으니까.
병문안 와서 제 집 마냥 누운 아이
병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은 주말마다 남편과 함께 병문안을 왔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고 떠들고, 둘이평소처럼투닥거리며 장난치다가 집으로 돌아갔기에 그저괜찮은 줄 알았다. 두 녀석 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표를 내지 않았으니나도 별일 아니라는 듯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아이들이 사고를 직접 목격한 것도 아니고 내 앞에서 눈물 바람을 한 것도 아니니 괜찮을 거라 지레 짐작했다.
내가 무사하다는 사실 만으로 안도하고, 빨리 퇴원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사고 기억을 괜스레 들춰내기 싫었다. 그날의 기억이 좋았을 리 없으니까. 굳이 아픈 기억을 꺼내 곱씹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받았을 충격은 감히 상상도 못 한 채, 나를 포함한 주변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금세 잊을 거라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엄마, 이쪽 안으로 들어와! 앞으로는엄마가 항상 안쪽에서 걸어."
"아니야, OO이가 보도 안으로 와. 차도 쪽은 위험해."
"그러니까 엄마가 안으로 들어와야지! 또 사고 나면 어떡해."
"엄마가 또 사고 날까 봐 걱정돼?"
"오토바이 다 폭파시켜 버릴 거야. 엄마 또 사고 나면 나는 죽어버릴 거야."
공개 수업이 끝나고 아이와 손잡고 집으로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거친 말과 함께 쏟아내는 아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항상 보도블록을 걸을 때 차가 다니는 쪽은 내가, 안쪽은 아이가 걷도록 했었다. 그런데 고사리 손으로 나를 잡아끌더니 한사코 안으로 밀어 넣는다.
이날 어린 둘째가 보인 행동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작은 마음에 얼마나 충격이었으면저렇게 말을 할까. 스스로 죽어버리겠다는 말엔 억장이 무너지고 눈가가 뜨거워졌다.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겠다는 약속을 몇 번이고 한 뒤에야 원래 걷던 제 자리를 찾았다.
그 뒤로도 오토바이 소리가 날 때마다 주위를 살피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고의 충격이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가 보내온 문자
'어서 제 자리를 찾아 집으로 가야겠다.'
병원에서는 조금 더 있으라고 만류했지만 더는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두 달에 가까운 기간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처참한 시간이었을까?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 되었으니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을 차례였다. 너무 나만 돌본 것 같아 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