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문이 닫히고 팩스브리핑이 끝나면 승무원들은 일제히 안전 점검을 시작합니다. 좌석 등받이를 세우고, 좌석 벨트를 맸는지 확인하고, 테이블과 창문 커튼 등을 제자리로 하도록 유도하지요.선반이 잘 닫혔는지 손으로 꾹꾹 누르며 복도를 지나가는 승무원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불안한 눈빛 하나.
손으로 가린다고 했지만 옆얼굴에 붙인 휴대전화와말하는 입이 바쁘네요.업무상 중요한 일일 수 있으니 잠시 기다려 봅니다. 모두 앉아 있는 공간에 듬직한 체격의 승무원이 우두커니 섰습니다. 보통의 경우는 눈치를 챙기지요.
"어, 나 이제 비행기 출발해. 나중에 내려서 전화할게!"
"손님, 비행기 모드 아시죠?"
눈을 찡끗, 트러블 없이 잘 마무리됩니다. 슬쩍 지나치면서 내려다보면, 해당 승객 휴대전화 오른쪽 모서리엔 작은 비행기가 떠있습니다.
승객들의 안전의식이 예전보다 높아진 걸까요? 과거에 비하면 안전 점검이 조금 수월해졌습니다.스마트 기기의 발달이 불러온 기내 풍경의 변화. 아주 미미할 것 같지만 실제 현장에서 일할 때는 큰 변화로다가왔습니다. 안전 점검 기준에 <비행기 모드>를 적용하기 전과 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한창 국내선을 타던 그 시절, 2000년대 초반은 <비행기 모드> 적용하기 전의 시기였지요. 당시 휴대폰에는 비행기 모드 기능이 없었을뿐더러, 이후 기능이 생기고 난 뒤에도 실제 안전 규범으로 적용되기까지 과도기가 있었거든요. 회사 자체 규정인지 항공법에 의한 것이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시기에는 비행기 문이 닫히는 순간부터 다시 문이 열리는 순간까지 휴대폰 사용이 금지됐습니다. 이륙을 위한 안전 점검을 할 때, 몰래 혹은 대놓고 통화를하거나 문자 하는 승객 옆에 서서,
"손님, 휴대전화 전원 꺼주십시오. 곧 출발합니다."
착륙 준비를 하고 점프싯(Jump seat, 승무원이 앉는 의자)에 앉아 있는 중에 고도가 낮아지면 전파가 잡히는 곳이 있습니다. 간혹 띠링 띠링 문자가 오거나 전화 벨소리가 들립니다. 이 시점에는 승무원이 움직일 수 없어 목청껏 소리 지르거나 방송을 하게 됩니다.
"손님, 휴대전화 전원 꺼주십시오!"
착륙을 하고 덜덜덜, 주기장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휴대전화 전원을 켜는 소리가 들리면 점프싯에 앉아서,
"손님, 휴대전화 전원 꺼주세요!"
강하게 고함을 지릅니다. 일순간정적이 흐르고 기내가 고요하다면 자리에서 엉덩이를 뗄 필요는 없습니다. 이동 중인 항공기는 위험하니 승무원도 자신을 보호해야지요.그러나,
"여보세요, 나 제주도 도착했어."
"렌트가 1시부터 빌렸는데요. 이름 OOO이요"
하는 말소리가 계속 이어진다면,승무원은 덜컹대는 비행기 복도를 흔들흔들 걸어나가 범인을 색출하게됩니다.
다시 한번 듬직한 승무원이 휴대전화전원을 켠 범인 옆에 섰습니다. 이번에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손님, 휴대전화 전원 지금 꺼주십시오. 항공법에 의거하여...."
한 두 번 얘기한 것도 아니고 비행 내내 쌓인 것이 터져 나온 걸까요? (실제로 전원을 끄지 않는 경우가 은근히 있어 비행 중에 발견하기도 합니다.) 항공법까지 운운하면서 이륙할 때와 다른 기세로 몰아붙이네요.
'안전하게 땅에 잘 내렸는데 유난하게 군다'고 구시렁거리며 승객은 마지못해 전원을 끕니다. 띠리링, 전원이 꺼지는 소리를 뒤로 하고 승무원은 다시 비틀비틀, 복도를 걸어 제 점프싯으로 돌아옵니다. 의기양양, 개선장군이 따로 없습니다.
휴대전화 전원 ON/OFF를 두고 벌이는 승객과의 신경전. 비단 승객과 승무원 간의 일만은 아닙니다. 그 반경이 승객과 승객 사이의 신경전으로 넓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언성이 높아져 승객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또한 안전 의식이 강한 승객이 주변에 통화하는 '간 큰 승객'을 눈짓, 손짓을 동원하여 제보해 주기도 합니다. 그런 눈치싸움은 현재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다만 그 대상이 휴대전화전원 ON/OFF에서 <비행기 모드> ON/OFF로 바뀌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비행기 모드> 사용과 더불어 발달한 항공기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몇몇 항공기는 자체 와이파이 연결로 지상에 있는 것처럼 휴대전화를 쓸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인터넷도 하고, 카톡, 보이스 톡도 가능합니다. 간혹 와이파이 연결이 끊기는 구간이 있기는 하지만 실시간 방송도 즐길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요. 물론 모든 것은 <비행기 모드>를 유지한 채로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잊지 마세요.
이제는 착륙 후, 정확하게 말하면 비행기 바퀴가 지상에 닿은 이후에는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승무원들도 예전처럼 휴대전화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지요. 승객들이 휴대전화 사용 기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그래서 요즘 승무원들은 비행기가 주기장에 세워지고 멈출 때까지 점프싯에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비상상황이 아닌 이상 자리에 앉아있는 게 규정화 됐습니다. 예전처럼 목청껏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되고, 흔들거리며 복도를 거닐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여보세요."
이한마디와 휴대전화 벨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나의 20대. 덜덜 떨리는 게 비행기인지 내 마음인지, 승객과 실랑이 한 뒤에 비틀거리며 복도를 걷던 듬직한 체격의 승무원. 저음이지만 목청껏 소리치던 그 시절의 승무원은 이제 덜컹거리는 추억 속으로던져두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