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단맛을 싫어하는 줄 알았어

사는 맛 레시피

by 달삣

"아유 엄마는 이 쓴걸 어떻게 먹어요"


친정 엄마가 담가준 씀바귀 김치를 먹으며 한말이었다. 도저히 삼키기 힘든 고도의 쓴맛이었다. 엄마 하면 생각 나는 쓴맛이다.


친정 엄마는 씀바귀 고들빼기 술등 쓴걸 너무 잘 먹어서 쓴맛만 좋아하는 줄 알았다. 꿀조 차 쓴맛의 밤꿀을 좋아한다.



남편의 사랑 없이 험한 세상 홀로 자식들을 키워낸 엄마는 산다는 것은 쓸개즙 핥아먹듯 쓴 인생을 악착같이 견뎌내듯 살았다.


쓰면 쓸수록 더 쓰게 더 쓰게 자신을 고생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글을 쓰며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글쓰기의 좋은 점은 사실을 객관화시켜서 거울처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만 어릴 때 이해 못하는 일이 있었다. 어릴 때는 잘 놀다가도 동네 아이들과 한 번씩 치고받고 싸웠다.


친구들과 싸우고 들어 오면 "왜 졌냐 때리지 못하고가 아닌 더맞고 들어오지 그랬냐"해서 어린 마음에 우리 엄마가 계모가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 한 번도 우쭈쭈 하며 내편을 들어주질 않았었다. 다쳐서 들어오면 다친 부분을 더 때렸다. 물론 심하게 다친 경우는 아니 었지만 말이다.


이런 행동은 엄마에게도 적용되는 고통 해결의 자학적 방법으로 반대로 말했음을 이제야 알겠다.


"이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냐.

늘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아야 한다"


했지만 엄마는 어둠이 깔린 방에서 울음을 참고 있는 걸 몇 번 보곤 했었다.


약간 엽기적 일지 모르게 보였던 모습도 있었다.


예전에는 보양식으로 보신탕을 잘 먹었었다. 엄마가 식당 할 때 보신탕을 한번 끓였을 때인데 잘 삶아진 개 해골 사이에 살을 바르면서 무표정 엄마의 얼굴은 다른 사람 같이 슬퍼 보였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시집오기 전에는 부잣집에서 귀이 자랐다는데 결혼하고서는 가시밭길이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팔십해를 지나오셨다.


코로나 시국이어서 잔치는 못했지만 엄마 팔순 때 동생들과 시내 호텔 뷔페를 갔다.


엄마의 쓴맛 사랑은 고단한 엄마의 삶과 닮아 있는 것 같아서 후식 먹을 때 안타까운 맘으로"엄마 케키 같은 단것 같다 줄까? "말하고 디저트로 단걸 잔뜩 갔다 줬다.


"야 야 단거 안 좋아하는데 뭘 이리 담아 왔니 아까와서 먹는다"


하면서도 행복한 모습으로 맛있게 하나도 남김없이 드셨다.


엄마도 달달한 것 좋아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남은 생이 달달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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