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시간에 따라 세월에 따라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불변하는 것은 살아있지 않음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죽어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내면도 변해야 한다. 더 나은 모습으로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항상 같은 위치에서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모든 불변하는 것, 그것은 다만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인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한다. 가장 훌륭한 비유는 시간과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비유로 하여금 모든 일시적인 것들이 옳다고 주장하고 또 이를 노래하게 하라. 그대 창조자들이여, 그대의 삶 속에는 수많은 쓰라린 죽음이 있어야만 한다. 새로이 태어나는 아이가 되기 위해서 창조자는 스스로 어머니가 되어 산고를 겪어야 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새로운 나로 변하기 위해서는 어제의 내가 죽어야 한다. 스스로 산고의 고통이 있더라도 그 길을 가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분명히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나의 모습이 부끄러운 모습일지라도 변하려 노력하는 자는 미래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아집에 붙잡혀 시간이 지나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변화에 눈을 돌리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항상 그 자리일 수밖에 없다.
불변적인 자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한 채 좁은 세상에 갇혀 그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각은 고집으로 확고해지고 잘못된 판단은 아집으로 굳어져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렇게 삶을 연명해 갈 뿐이다.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불변적인 자아로부터 우선 탈피해야 한다. 나 스스로 그러한 노력을 함으로써 그 단계가 시작될 수 있을 뿐이다. 보다 나은 나 자신을 위해서는 고통도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한 산고의 고통을 두려워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확고한 불변적인 자아에 사로잡혀 삶의 깊이를 모른 채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