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마음여행자 Oct 06. 2018

아보카도 덮밥, 저도 좋아하는데요

아보카도가 딱 한 개 남았다. 냉장고 속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아보카도 외에는 마땅한 먹거리가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보카도 덮밥을 만들기로 했다. 잘 익은 아보카도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밥을 퍼서 그릇에 담은 뒤 썰어 놓은 아보카도를 보기 좋게 얹었다. 반찬이 궁할 때면 늘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계란 프라이와 쫑쫑 썬 김치도 빠질 수 없었다. 며칠 전 구입한 밥도둑 청어알까지 데코레이션을 한 뒤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을 화룡점정으로 떨어뜨리고 나니 제법 근사한 일품요리가 완성되었다. 남편과 두 아이들의 아침 식사였다. 아이들과 남편은 쩝쩝 소리를 내며 맛있게 한 그릇을 비웠다.


식구들을 보낸 뒤 마른 식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설거지 통에서 빈그릇을 씻으며 괜히 서러웠다. ‘아보카도 덮밥은 저도 좋아하는데요’ 언젠가 모 TV 프로그램의 PD가 유행시킨 말이 말풍선처럼 둥실 떠올랐다. 딱 한 개뿐인 아보카도가 나한테까지 돌아올 여유는 없었다. 아이들이 “엄마 밥은?”이라고 물었을 때도, 남편이 “당신은 안 먹어?”라고 의례적인 멘트를 날릴 때도 “엄마는 나중에 먹을게. 어서 먹고 학원 가야지”라며 여유 있게 웃어 넘겼는데 갑자기 뒷북치듯 올라오는 이 감정의 정체는 뭐지?


맛있는 반찬은 의례 남편과 아이들 몫이었고 밥이 모자라면 빵이나 라면으로 때우길 자처한 사람은 나였다. 지금껏 그렇게 살았지만 부당하다거나 속상하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한 끼 밥 정도 양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편해지는 관계는 결코 바람직한 관계가 아닐터인데 그 누군가가 나일 때 가장 무심한 사람은 나였다.


엄마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문화 속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희생해야 한다면 일 순위는 항상 엄마였다. 친정집 세 딸들의 성장사 속에는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의 삶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한 나는 결혼 후 자동반사 인형처럼 엄마의 삶을 되풀이했다. 이제는 그만둬야 할 때이다. 내 딸들이 결혼 후 자신의 희생을 당연지사로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깟 밥 한 그릇이 대수가 아니었다.


마트에 들러 잘 숙성된 아보카도를 고르고 갓 지은 고슬고슬한 하얀 쌀밥에 얹어 근사한 밥상을 차려야겠다. 오로지 나를 위한 밥상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이어 마모의 흔적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