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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Apr 24. 2024

산삼을 찾아서

  수업이 끝나고 복도로 나오니 2층이 시끌시끌했다. 올려다보니 4학년 교실에서 상준 오빠가 선생님께 야단맞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상준 오빠는 우리 언니와 같은 반이었다. 어쩌다 학교에서 보게 되면 늘 선생님께 혼나는 모습이었다. 그날은 유독 선생님의 목소리가 더 화나신 것 같았다. 마침 계단을 내려오는 언니에게 혼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상준 오빠가 반 친구들에게 용진 상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주고 과자도 사주며 거의 만 원어치를 썼다는 것이다.


  ‘깐도리’ 아이스크림이 오십 원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만 원이면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우리는 우르르 층으로 몰려가 복도에서 교실 안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평소 상준 오빠의 불량스러운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선생님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를 물었다. 그 오빠는 자기가 산삼을 캐서 팔았고 어머니가 용돈을 줬다고 했다. 창문 너머로 선생님의 기막혀하는 표정이 역력히 보였다. 거짓말을 해도 그럴듯하게 해야지 ‘역시 저 오빠는 바보가 맞았구나’ 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를 통해 놀랍게도 그 오빠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바탕골’ 산에서 산삼을 캤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오빠가 선생님께 억울하게 혼난 일보다 바탕골 산에 산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고 믿기지 않았다. 선생님께 늘 혼나는 상준 오빠가 산삼을 캤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오빠는 산삼을 팔아서 백만 원을 벌었다고 했다.


  별안간 나도 돈을 벌고 싶었다. 저런 개구쟁이도 산삼을 캐는데 내가 작정을 하면 산삼을 몇 뿌리고 캘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동생과 함께 틈만 나면 뒷산에 올랐다. 바탕골보다는 우리 동네 산이 더 영험하다고 느꼈던 터라 뒷산에 산삼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주 놀던 곳이었지만 우리가 자세히 안 봐서 산삼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큰 나무 주변에 키 작은 나무만 보이면 일단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산삼은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야트막한 산은 오래전에 사람들이 다 캐간 것 같았다. 심마니들이 동네 사람 몰래 산에서 산삼을 캐간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던 터라 우리는 조금 더 높은 데를 찾아다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무성한 숲은 팔과 다리에 상처를 내기도 했다. 산삼을 위해서라면 그런 것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지극 정성에도 불구하고 끝내 산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엄청난 함정이 있었다. 우리는 사실 산삼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상상 속에서 산삼을 만들어 냈다. 그러니 설령 진짜 산삼이 눈앞에 나타났더라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었다. 대상도 모른 채 열정만으로 산삼을 찾으러 다녔던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결국 산삼 찾는 일을 그만두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우리의 '부업'을 끝내고 나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동생이랑 의논 끝에 좀 더 현실적인 다른 일을 찾기로 했다. 그것은 땅바닥에서 동전 줍기였다. 혹시라도 동전이 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작업에 들어갔다. 평지를 돌아다니며 찾아보는 것은 산보다 훨씬 수월했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마을 바닥에 눈을 고정한 채 며칠을 돌아다니다 이십 원을 겨우 주웠다. 목소 상회에는 십 원에 두 개 하는 사탕이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사 먹고 억지로 행복해하며 우리의 부업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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