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서랍 속 한 뼘의 저녁
앓음다운 영혼의 피 냄새
마크 로스코와 나 2
한강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이렇게 멎는다
기억이
예감이
나침반이
내가
나라는 것도
스며오는 것
번져오는 것
만져지는 물결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의 피
어둠과 빛
사이
어떤 소리도
광선도 닿지 않는
심해의 밤
천년 전에 폭발한
성운 곁의
오랜 저녁
스며오르는 것
번져오르는 것
피투성이 밤을
머금고도 떠오르는 것
방금
벼락치는 구름을
통과한 새처럼
내 실핏줄 속으로
당신 영혼의 피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19-21쪽.)
[몸말로 읽기]
1. 마크 로스코
이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야, 라고 제목에 박아놓았으니, 마크 로스코에 대해 좀 생각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마크 로스코는 화가입니다. 화가란, 우리말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그림이라는 말이 회화(繪畫)의 한 기법에서 온 말입니다. 긋다, 그을 획(畫)에서 온 겁니다. 회화의 회(繪)는 수놓다, 라는 말에서 칠하다, 라는 기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마크 로스코의 기법을 한 번 보겠습니다.
‘붓 대신 스펀지로 발라 /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그음(畵)과 칠함(繪)을 넘어서 번짐(濅)과 스밈(浸)입니다. 마크 로스코가 회와 화를 넘어서 추상을 표현하는 기법이 번짐과 스밈입니다. 한 번의 터치로 그 터치가 완료되는 것이 아닙니다. 긋기와 칠하기를 무수히 반복해야 그림과 색채가 나오지만, 단 한 번의 터치로 터치 이후의 과정이 이어집니다. 그것이 스밈이고, 번짐입니다. 한강의 시에서는 피의 스밈이고, 영혼의 번짐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뇌를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가르는 겁니다. 갈라서 본 영혼의 모습이 그렇다는 겁니다. 고요히 붉은 피들이 번지고 스미고 있다는 겁니다.
영혼을, 존재를 대상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 냄새를 맡으며 관계 속, 영혼 속으로 스며 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감응의 조건입니다.
2. 스밈과 영혼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의 <사랑과 영혼>은 잊으세요. 그런 ‘이원론적 영혼’은 없습니다.
‘어둠과 빛 / 사이’
자기의 의식(빛)과 그 자기의 의식 너머 내면(어둠)에 이르면, ‘어떤 소리도 / 광선도 닿지 않는 / 심해’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심연(深淵)’이라 합니다. 그곳이 ‘영혼’의 거처입니다. 거기에 광활한 우주와 영겁(永劫)의 시간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라고,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에, 윤동주가 자기 영혼과 만나는 눈물 나게 아름다운 대목이 나옵니다. 제게도 제 영혼을 처음 만난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상처 입고 세상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는 아픈 영혼이 제가 만난 제 영혼의 처음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제 영혼이 얼마나 ‘앓음답게’ 거듭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영혼은 자기의 의식 너머에서 자기를 살아가게 하는 자기 심층의 내면입니다. 자기의 표층의 의식은 서서히 자기의 심층의 영혼으로 스며듭니다. 그것을 자기 내면화, 육화라고 하는 겁니다. 영혼의 내부적 활동은 스밈과 번짐에 의해 확충됩니다. 확장적 수렴, 수렴적 확장이 영혼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기 생성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때조차, 그 근원은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 있습니다. 즉 자아의 뿌리는 의식이 아닌 무의식, 무의식보다 더 깊은 심연에 있습니다. 이것이 확장적 수렴입니다.
영혼은 자기 내면의 '자기 신명'입니다. 영혼이 관계 속에서 어우러질 때 그것을 '집단 신명'이라고 합니다. 더 깊은 심연을 한민족은 '천지 신명'이라고 했던 겁니다. 곧 우주 생명을 말하는 겁니다. 우주의 리듬, 우주의 몸말입니다. 이것이 수렴적 확장입니다.
"어떤 소리도 / 광선도 닿지 않는 / 심해의 밤 / 천년 전에 폭발한 / 성운 곁의 / 오랜 저녁"
한강은 심연을 건넜습니다. 그 무한한 우주의 시간을 '저녁'에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3. 한강의 영혼과 내 영혼
영혼은 벼락 치는 구름처럼, 폭발하는 성운처럼 순식간에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상을 후려치면서, 스며 오르고 번져 오릅니다. 피투성이의 모습으로. ‘한 사람의 영혼을 갈라서 / 안을 보여준다면’, 이 말은 한 사람의 영혼을 만나기 위해 그 사람의 온 삶을 뚫고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영혼의 피비린내 나는 고백이자, 영혼의 몸말입니다.
‘그래서’ 온 몸으로, 온 삶에 스며들어야 하는 것이기에, 그 사람의 영혼의 피 냄새가 난다는 겁니다. ‘고요히 붉은 / 영혼의 피 냄새’가.
한강이 그랬듯이, 마크 로스코의 영혼의 피가 한강의 영혼을 냅다 후려쳤듯이, 저는 한강의 영혼의 피 냄새를 맡으러 한강의 시 작품들 속을 기웃거립니다. 아직 한강의 소설 속에 배어있는 참혹한 피 냄새를 맡기에는 제 영혼이 너무 미약한가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강의 앓음다운 영혼의 피 냄새가 청와의 알음다운 영혼에 스며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