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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 Oct 18. 2024

세 번째 조각


꽃 피는 계절이 되면 제 사진첩에는 꽃 사진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어요. 저는 사진을 잘 찍는 편이 아니라 이 각도 저 각도, 쌩 난리를 치면서 사진을 찍는데, 꽃 하나에 수십 장을 찍는 거죠. 그래서 핸드폰 용량도 늘 빨갛게 물들어 있어요. 전 그만큼 꽃을 좋아한답니다. 올봄에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꽃 박람회도 두 번이나 다녀왔으니 말 다한 셈이죠.


어릴 때는 꽃 선물이 그렇게 좋았어요. 특히 생화로요. 싱글싱글한 꽃을 받으면 제 마음도 싱글해지는 거 같거든요. 물론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요.


에피소드를 좀 얹어보자면,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남자아이가 학교로 꽃을 보낸 적이 있어요. 쉬는 시간에 맞춰서 배달 온 꽃 100송이는 제 품에 안겨졌죠. 맞아요. 100일 기념 꽃이었어요. 친구들은 부럽다며 제 주위로 몰려드는 데, 저는 그 시선과 관심이 너무 힘들고 불편했어요. 게다가 윤리 선생님에게 야단까지 맞고 나니 꽃이 보기가 싫더라고요. 그 당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하루가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꽃은 예뻤답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고 환상보다는 현실이 더 중요한 요즘, 생화보다는 조화에 더 마음이 가요. 생화는 보는 그 순간은 너무 예쁘고 좋지만, 처리하기가 사실 귀찮거든요. 보통 생화를 선물 받으면 부케 말리듯 정성을 다하진 않아요. 적어도 저는 그래요. 그냥 받은 꽃다발 채로 거꾸로 매달아 놓고 말리는데, 생각보다 제가 원하는 모양의 말린 꽃이 되기도 쉽지 않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모습 그대로인 조화가 더 좋아지더라고요.


단 둘이 앉아 있는 조용한 공간에서 살짝 눈 감은 제 손에 쥐어진 안개꽃 조화. 무심하지만 감출 수 없는 설렘, 손 끝에서 느껴지는 떨림까지. 꽃을 받고 좋았던 때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가 조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누군가의 마음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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