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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Apr 23. 2024

그 겨울의 기억

2013년 겨울 매물도

계절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고 하더니만

못다 한 그리움이라도 배어 있는 듯한 생채기에

등 떠밀리 듯 겨울바다에 나가 보았습니다.


저기 저만치에, 팔이라도 뻗어내면 닿을 듯한 거기에는

아직도 지난가을의 짙은 향기가 남아 있어

듬성듬성 드러누워 있는 이 계절의 모양이

어쩐 일인지 을씨년스러워 보였습니다.


어린 달빛을 닮은 선창가 가로등 아래엔

올망졸망 눈빛을 반짝이며 탐욕스런 발길질을 해대는 녀석들과 커다란 눈망울만큼이나 겁 많은 녀석들이

시장함을 달래 주고 있었는데

잠시 잠깐의 소란스러움이 다행이었나 봅니다.


그저 아무런 욕심 없이 녀석들을 탐하고 있던 저에게

먹이인 줄 알고 쏜살같이 덤벼드는 녀석들에게도...


지난밤의 피곤함이 묻어 있는 이른 아침.

그다지 시간을 다투는 일도 없는데, 무언가에 쫓기 듯

퀭한 눈을 비비며 열어젖힌 창밖엔


서투른 일과에 지쳐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날에

가끔씩 꿈속에서라도 나타나

지난가을부터 시작된 몸속의 신열을 쓰다듬어 내려주는

그를 태우기라도 한 듯 여객선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휑한 방구석 한쪽

겹겹이 가슴속에 감춰 뒀던 어쩌면 부질없을지도 모를

바람들을 흘려보내고


철없던 유년기부터 되풀이되었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아내의 걱정스런 잔소리만이 귓가에 울리며 또 다른 하루의 즐거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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