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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자 농부 Oct 22. 2021

당신, 왜 그랬어요? 1화

검은 허공, 낯선 곳에 와 있는 이선에게 여자가 묻는다.

“증인 1002호, 왜 그랬어요?”


질문을 던진 맞은편 여자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깜깜한 방.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다. 공간의 크기조차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어둠 속에서 이선은 몸을 떨었다. 금속 재질의 의자가 유독 차갑게 느껴졌다.


“여긴 어디죠? 당신은 누구세요?”


“다시 묻겠습니다. 왜 그랬어요?”


“뭘 말입니까?”


“왜 그랬어요?”


“경찰인가요? 제가 범죄자도 아닌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선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점잖은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이곳으로 어떻게 이동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고 있던 자신에게 누가, 어떻게 양복을 입히고 타이를 메게 한 것인지 몰랐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왜 그랬어요?”


이선은 최선을 다해 맞은편에 앉은 여자의 얼굴과 옷매무새를 살폈다. AI 혹은 홀로그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여자의 이마에서 가는 주름이 발견되었고, 얼굴도 완전한 대칭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가 인간이라고 확신할 순 없다. 불쾌한 골짜기를 피하기 위해 요즘 AI는 모두 ‘인간적인’ 얼굴을 달고 출시되었으므로. 목소리마저 떨림이나, 갈라짐 등의 효과를 넣어 허술하게 만듦으로써 인공의 존재들은 스스로를 낮췄다. 너무 완벽하지 않도록.


“자, 묻습니다. 왜 그랬어요?”


“당신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이게 합법적인 건가요?”


이선은 의자 뒤로 수갑 채워진 양손을 흔들며 강한 어조로 물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 창자가 튀어나온 채로 죽은 시신들, 갱단이 참수한 뒤 다리 아래에 메달아 놓은 시신들의 모습이 차례로 나타났다. 폐색이 일어난 창자의 일부가 보라색으로 변하거나, 살점이 듬성듬성 떨어져 나간 시신의 목 부분이 확대되어 촬영된 영상이 나타났다.


“악! 치워줘요, 제발. 제발. 치워줘요. 토할 것 같아요.”


남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텅 빈 위가 뒤집혀 위액이 역류하며 요동쳤고 그는 연거푸 헛구역질을 했다. 눈앞이 노래지고, 입에서 침이 줄줄 새어 나오자, 그의 눈앞이 다시 까만색으로 변하더니, 하나의 문장이 나타났다.                                             


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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