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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문아 Sep 28. 2022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하소연 한 장

room 휴게실.

쉬고 싶다.



쉼 없이 달려온 것도 아닌데, 느적거리며 걸어온 것뿐인데. 심지어 중간중간 무턱대고 주저앉아 쉬었던 때도 많은데, 꼭 100m를 전력질주한 것처럼 눈앞이 캄캄하다.




글을 쓰는 게, 너무 어렵다. 마냥 쉬고 싶다. 글을 올리지 않은지 한 달이나 됐다고 빽빽 울어대는 핸드폰 알림마저 신경에 거슬린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늘은 꼭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지-' 하고서, 집에 와서는 드러누워버리기가 일쑤다. 멋들어진 글을 올려놓은 사람들의 글을 손가락으로 스윽 스크롤하며, 마음속에 마냥 '나도 써야 하는데...' 하는 죄책감만 만져대고 있다.





최근에 친구에게 브런치북 공모전에 응모하려고 글을 쓰고 있다고 말하니, 그 친구가 눈이 동그래져서는 이렇게 물어왔다.




"아, 너 아직도 브런치에 글 꾸준히 쓰고 있어?"

 



참, 희한하게도 마음이 푹 찔리는 말이다. 아니, 꾸준히는 무슨. 아예 안 쓰고 있다. 공모전에 응모하겠다고 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나는 글을 쉬이 써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너무 멋진 글을 쓰고 싶어 손에 힘을 잔뜩 쥐고 있어서일까. 몇 줄 겨우 끄적이고서는 금세 손이 지친다. 내 마음속에 생겨난 그 모든 감정들의 방을 다 털어놔보겠어! 아주 으리으리한 선전포고를 하고서, 채 다섯 개 방을 돌기도 전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패잔병처럼 처참한 몰골로 허겁지겁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도망쳤다. 그저 쉬기 위한- 왜 내가 글을 쓰기가 어려운지에 대한 하소연에 그치는 글을 쓰려고 도망쳐왔다.




그러니 이 글은, 휴식의 글이다. 쉽게 쓰고, 하소연하고 싶어서 노트북조차 키지 않고 핸드폰 자판을 두들긴다. 꼭 친구와 카톡 하듯이.







처음에는 그저 내가 느낀 감정들을 진솔하게 풀어내고 싶었다. 그런 글에 대해 누군가에게는 알기 쉽고,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고, 누군가에게는 저릿한 공감을 주는 글로 남고 싶어서 모든 감정에 색을 부여했다. 우울함은 파랑, 사랑은 분홍, 이렇게. 태어나기를 공감능력이 높게 태어난 나는 그런 표현은 어렵지 않았다. 어릴 적 잠들기 전 내내 하던 공상 속 이미지들을 흐릿하게나마 글로 풀어낼 수 있으니 오히려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다, 이 브런치는 그저 내 일기장이 아닌 것이 큰 문제였다. 글을 쓴다면, 그것이 내 일대기를 풀어내는 자서전에 준하는 에세이여도, 때때로 나 아닌 타인의 이야기가 필연적이다.




"나는 우울했다. 파란 방에 갇혀있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누가 이것에 공감할까. 내가 시인이라거나 작사가였다면 저 한 줄로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쓰는 건 에세이가 아닌가. 에세이에서는 앞뒤 상황설명이 필수다. 근데 앞뒤 상황설명 하자니, 타인에 대한 얘기가 꼭 들어가야만 한다.




"나는 이러이러한 개새끼 때문에 우울했다. 그 새끼가 이러이러하게 해서 내가 파란 방에 갇힌 기분이었다."


 

어렵다. 위와 같이 글을 쓰려고 하면 꼭 이런 생각들이 한 방울씩 침투한다.




'꼭 그렇게 개새끼까진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글을 재밌게 쓰려고 오버하는 거 아닌가.'

'내가 맘대로 평가한 잣대로 이 사람을 묘사하는 건 아닐까.'

'혹시나 내가 공모전에 당선되고 내 글이 유명해져서 이 사람이 내 글을 보면 어떡하지?'

'내 글을 보고 자기인걸 알고 날 고소하겠다고 하면?'



김칫국인 것, 나도 안다. 하지만 정말, 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는 순간부터는 글이 술술 써지지 않는다. 막힌다. 끈적끈적한 기름이 딱딱하게 굳은 하수관처럼 글이 흘러 내려가 주지 않는다. 손끝까지 흘러내려가 장황하게 펼쳐져 주지 않는다. 그러면 꾸역꾸역, 추상적으로, 애매하게 타인에 대해 쓰게 된다. 단순화하고, 일반화시켜 모호하게 상황을 설명하게 된다.



'내가 싫어하는 직장상사 A는, 내가 을 못한다고 거들먹거리며, 일도 못하네~하고 비아냥거렸다. 재수 없는 놈'을


'직장상사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


정도로 무미건조하게 바꿔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은 일순간 편안해진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글을 보면, 글이 '노잼'이 되어있다. 그때부터는 또 새로운 고민의 시작이다. 읽는 독자들이 느낄 감정에 대한 고민이다.  글이 너무 재미없는데, 다시 써야 하나, 하는 고민들이 시작된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정말이지 글 쓰는 건 어렵다. 타인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조별과제 발표보다 더 어렵다. 루하루 매일 글을 쓰는 작가들이 정말 존경스럽다.  고민들의 턱을 넘어서서, 이제 손이   어떠한 속박 없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작가들이 막연히 부럽다.

 





요즘에는 브런치에 새로운 글들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 정말 모두들, 쉼 없이 뛰고 있다는 게 브런치 메인만 보아도 생경하게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나는 헥헥거리며 휴게실에 왔다.

쉬고 싶다.

쉬어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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