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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SCENE
By 페이스메이커 . Jan 06. 2017

'혼자'에 대하여


최근 방송 프로그램의 화두를 꼽으라면 아마 '혼자'가 아닐까. 

1인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누군가의 일상을 바라보고 공감한다는 것. 요즘 대중들이 원하는 포인트다. 

사는 공간도 삶의 방식도 다르지만 '나 혼자서 삽니다'라는 공통점 아래 묶인 이들도 있고,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겠으나 늦깎이 나이에 홀로 살며 미운털 제대로 박힌 누군가의 새끼들도 있다.

그 뿐이랴.

혼자 떠나는 여행을 담아내는 프로그램부터 혼자 살 집을 스스로 짓는 과정을 보여주는 곳도 있다. 



5년 전쯤만에도 혼밥, 혼술 등 홀로 사는 사람들은 마치 사회적 차원의 무언가로 보듬어줘야 할 구제의 대상처럼 여겨졌다. 방송에서도 캠퍼스 안의 혼밥족들을 인터뷰 하며, 마치 그들이 치열한 취업 경쟁과 88만원 세대로 규정된 회색빛 그늘에 놓인 나머지 어쩔 수 없이 '혼자의 삶'을 걷게 되어버린 사람들처럼 묘사했다. 

기어이 한 평 남짓한 고시원 방을 찾아가 텅 빈 냉장고를 여는 장면을 보여줬고, 방송 말미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하며 '나는 잘 지내, 내 걱정은 말아'라는 멘트를 통해, 보는 사람까지도 알 수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방송의 취지야 그게 아니었겠지만, 그 때의 프로그램들은 그랬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사이 상황이 많이도 변했다. 

나조차도 식당에서 누군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영화관에서는 누가 혼자 왔고 누가 짝을 지어 왔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고, '2인분 부터 배달 가능합니다'라는 맛집 책자 속 문구는, 먹을 때 두 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이왕 시키는 거 점심-저녁 다 우리 집에서 해결하쇼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혼자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되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나 역시 학생의 신분이던 시절엔 누군가와 어울리는게 좋았다. 

혼자 밥을 먹느니 대충 굶는게 더 편했고, 무언가를 같이 할 친구가 없을 때면 불안했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챌까 일부러 바쁜척을 해야하는 때도 있었고, 더 나아가 마치 '사람 만나는 것에 지치고 지쳐 이제 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라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재수없음도 강행했다. 

생각해보면 그 땐 혼자라는 사실이 불안했던 것이 아니라, '혼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래, 인생은 더불어 사는 거라며. 혼자는 외로운 거라며.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이라고 어느 책에서 읽은 거 같아.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 또 어떤 좋은 명언이 있더라...?'



TV 속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변했듯 나의 가치관도 조금씩 변했다. 

변화의 가장 주요한 동기는 본격적인 '사회 생활'이었다. 대학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아니 그 유명한 취업 전문가도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앞으로 니가 취업을 한다면, 미치도록 싫은 사람과 같은 팀이라는 이유로 일주일에 다섯 번, 하루에 최소 9시간 이상을 함께 해야 해. 그리고 너는 그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하루에 2-3시간도 채 함께하지 못하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풀게 된단다. 친구들은 함께 웃고 즐거워하던 존재에서, 내 일상의 푸념을 들어주는 존재로 점점 바뀌어가고, 너의 이름을 가장 따뜻하게 불러주는 사람은 니가 그토록 기다리던 문 밖의 택배 기사님일거야.'



그래. 이 간단한 몇 문장만 미리 알려줬어도 내가 마음의 준비는 했겠지. 

하지만 다행인 건 덕분에 '혼자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되었다는 것. 그게 가장 큰 소득이었다. 

누군가를 통해서 바라보는 나, 누군가에 비추어 마주하는 내가 아닌 진짜 나와의 1:1 만남. 

한동안 그건 참 어색하고 힘든 일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서먹서먹한 친구와 우연히 버스에서 마주쳐 다섯 정거장 정도 지나 내릴 때까지 의무적으로 대화를 이어가야만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몇 마디 나눠본 것을 계기로 친한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듯, 나는 '나와의 만남'이 그랬다. 

직장생활 4년차에 접어들고 사람에 지쳐갈 때쯤 난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거 참, 스스로 왕따가 된 걸 고급지게도 표현하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알만한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소중하고 매력적인 경험인지를. 



감히 정말 모든 게 변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작은 평범했다. 많은 혼족들이 그러하듯 혼자서 쇼핑하고 밥먹고 영화보고... 주말의 오후를 카페에 앉아 책, 노트북과 함께 하며 보내는 것. 그러다 조금 익숙해지면 (혼자 가기에는) 꽤나 멀다 싶은 곳들을 찾아 다니게 되었고, 여행이란 것도 꼭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나를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자연스레 털어버리는 방법을 배우고,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괜시리 하게 되던 의미없는 행동들을 차츰 지워가기 시작했다.

마치 태어나 한 번도 이사를 가지 않아 딱히 청소 외에는 '정리'라는 개념이 필요치 않던 내 방을 새롭게 단장한 느낌이었다. 내가 생활하기 가장 편한 위치에 가구를 배치하듯 인간 관계 역시 가장 피로감이 덜한 상태로 재배치했다. 10년 동안 한 번도 쓰지도 찾지도 않았던 물건을 과감히 버리 듯, 연초와 생일 정도에나 의무적으로 안부 인사를 나누는 카톡 지인들을 한 켠으로 미뤘다.   



내 생활 속에서 '나'를 첫 번째 관리 대상으로 두는 것은 꽤나 괜찮은 경험이었다. 

모름지기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를 위해서는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과 친해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전제임은 확실하다. 

나와 친해지기 시작한 이후로 누군가에 의지해 나를 판단하는 버릇을 꽤 많이 고쳤다. 남의 말에 귀를 닫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대기 앞서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내가 맞다고 판단이 들면 나를 신뢰하게 되었고, 내가 틀리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포기도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 자신과 친해지기에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적당히 오래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 자신과 친해지기에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생활을 꼭 추천하는 건 아니다. 혼자라면 너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의 경우 타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 지치고 상처 받고 이를 싸매고 부상투혼을 펼치느라 자신과 가까워지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 꼭 권하고 싶다. 스스로와 친해지는 법을 말이다. 

'나 혼자 사는' 청춘 남녀에게 '무지개 회원'이란 이름의 존재들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 

나이 들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피규어를 모으고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동이틀 때까지 클럽에서 논다고 해도 그들이 꼭 '미운 새끼'인 것은 아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You are not alone)'라는 말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있기에 혼자가 아니다. 1차적으로 그렇고 필연적으로 그렇다. 




illustration by Jorge R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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