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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 음악 : Tomboy - 혁오
(중략)
… 길을 따라 들어선 공원에는, 귀여운 갈매기 궁둥이 두 짝이 이색적인 환대를 해줬다.
녀석들 서로 데면데면한 척 하지만, 사실 꽤나 단짝이다.
한 녀석은 왼쪽으로 살짝, 다른 녀석은 정면을. 사주 경계를 하는 건지, 토라진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발을 보니 한 녀석의 그림자가 다른 녀석에게 닿아 있었다. 그들은 몸과 그림자가 떨어질 듯 말 듯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게 녀석들이 ‘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독립적인 듯 보이지만, 함께라고 인식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
모두에게도 그 정도의 거리는 필요하다. 그 거리를 유지하고 보장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상식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선을 너무 쉽게 넘는다.
나이, 지위, 서열 등의 요인이 거리감을 깨는 것을 쉽게 한다. 상사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라는 이유로 상대의 상처를 쉽게 들추고 쑤신다. 우리(us)가 되라는 이유로 상대방을 쉽게 재단하고 평가하고 힐난한다.
그런데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그렇기에 이제 갓 들아온 신입이나, 조직의 사장이나 인간으로서 부여된 존엄의 크기는 동일하다.
그렇기에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게 일하는 노동자로서,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스스로 나의 존엄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이다.
나는 사회 초년생 시절 처참하게 부러졌다. 그렇지만 억울했다. 세간의 평가보다는 내가 훨씬 괜찮은 사람임을 스스로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를 갈며 생각했다.
‘그래. 나 같은 사람들의 편이 돼주자, 내가 겪었던 좌절과 방황을 비슷하게 겪고 있는 이들에게 힘이 돼주자 ‘라고.
그게, 지금 몸담고 있는 일을 하게 된 계기였다.
최근에 아프던 와중 속상한 일도 많았다.
나의 부재가 무능으로 이어져 보이는 순간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혼자 목놓아 소리치고 싶었다. “다쳐서 그런 거라고! 다치지만 않았어도 달랐을 것이라고. “
그러나 그런 마음조차 변명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회복의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였다. 몸이 불편해지고 나서야,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더 동의하게 됐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졌다.
마음이 닫혀있는 내담자에게, 깊은 대화와 공감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것. 그것은 과거에는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었다. 온통 내 중심적인 자아 속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쉽게 끼어들기 어려운 법이었으니까.
그런 나를 아내는 조금씩 열어줬다. 폭이 넓고 깊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품에 안겨보니 나보다 더 깊고 섬세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듣기 시작했다. 아내가 나에게 듣는 법을 가르쳤다. 마치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리키듯, 절대 서둘지 않고 천천히. 늘 본인이 내 얘기를 경청한 후 공감해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나는 그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렇게 내 안에 타인을 받아들일 공간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 상담한 직원은 나와 거의 같은 유형의 사람이었다. 내가 겪었던 불운을 거의 판박이처럼 겪었고, 한 차례 홍역을 겪은 후에도 상황은 쉽게 반전되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관점, 그 일을 대하는 성격등이 나와 정말 비슷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깊게 공감해 주고, 나 또한 그런 일을 겪었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본인에게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나고 보니 시련들이 모두 성장의 거름이 되었음을 고백했다.
내담자는 돌연 표정이 바뀌더니 눈물을 터뜨렸다. 그녀는 나에게 감사를 표했다. 본인과 같은 일을 꼭 판박이처럼 겪은 선배가 계셔서 너무 놀랍고, 잘 살고 계셔 주어 감사하다며 말했다. 앞으로 나도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며 고백했다.
나는 “잘 이러지 않는데..” 라며 내담자와 함께 울었다. 그리고 이런 대답이 머릿속에 떠돌았으나, 속으로 삼켰다.
“저도 덕분에 힘을 얻었어요. 사실 저는 누구에게 모범이 되거나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런데 대화를 하다 보니 제가 왜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처음에 품었던 마음이 다시 떠올랐어요. “라고..
그렇게 나의 마음도 재활을 거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