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아직 끝나지 않은」

임진왜란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서생포왜성 앞 바다

by 정선생

이미숙의 「아직 끝나지 않은」은 ‘서생포왜성’을 소재로 삼은 시이고, 울산시인협회에서 2019년 봄에 펴낸 『울산 詩』 20호에 실린 작품이다.


서생포왜성 이전에는 조선 수군의 ‘서생포 만호진성’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만호진성 터에는 성벽의 기초석 일부만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임진왜란 시기에 왜군이 ‘서생포성’을 쌓기 위해 ‘성돌’을 빼어갔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한다. ‘서생포왜성’은 우리나라 동남해안에 있었던 왜성 가운데 가장 큰 성이고, 한 때는 7천여 명의 군사가 주둔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부터 1895년까지 ‘서생포진성’으로 사용되었지만, ‘일본식 성’이라서 일제 잔재청산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서생포왜성’으로 바뀌면서 문화재적 가치도 강등당했다. 한편으로는 서생포성을 이루는 돌이 서생포 만호진성의 것이라 생각하면, 단지 왜군이 지었다는 이유로 문화재적 가치를 강등시킨 것이 야속하게도 느껴진다. 현재는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미숙 시인은 이러한 서생포왜성에서 느낀 정서를 시로 전달하고 있다.

하필
이름도 모를 들꽃들이
왜성 한구석에 다닥다닥
바람자락이나마 잡겠다
땅을 끌어안은 채
얼굴만 내밀어 떨고 있다

온몸을 휘감는 젖은 그리움
살품 가득 안겨 오고
칼날 같은 잡초가
지친 걸음을 붙잡는다
기나긴 세월 지나 만났기에
하고 싶은 말이 있음은 아닐까
애써 귀 기울였으나 그저 붙들고만 있다
오랜 기다림에 말을 잊었음이야
그저 붙들고만

서생포성을 떠돌던 바람
들꽃을 어루만지다 산 아래로 구른다
오래전 파도 소리에 잠들었을
바다 마을 주인들
그 세월만큼 멀어진 바다를 그리워하는
침묵의 통곡들
굴곡진 한(恨), 한 올 한 올 풀어헤쳐
바다로 가거라

지난번에 읽었던 김종연 시인의 「언양읍성」에서처럼, 이 시에서도 쓸쓸한 감정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시 전체에서 ‘이름 모를 들꽃’, ‘젖은 그리움’, ‘침묵의 통곡’, ‘굴곡진 한’과 같은 시어가 나타나면서 ‘서생포왜성’이라는 공간이 갖는 정서를 형성하고 있다. 아무래도 서생포성에서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떼어 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 같다.


물론 어떤 이들은 서생포성에 가서도 역사적 사실에서 오는 감정보다는 탁 트인 전망을 조금 더 좋아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맑은 날 오르면, 성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꽤 근사하다. 시인이 말하는 그리움이나 한(恨)이 시인 자신의 관점이 투영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순전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서생포왜성’에는 왜군이 수천 명씩 주둔했기 때문에 ‘조명연합군’과 ‘왜군’의 전투가 없었다는 오해가 흔하다고 한다. 실제 기록상에는 ‘서생포왜성 기습’ 외에는 별다른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은데, 사실은 서생포왜성 주변에서 ‘조명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남지 않은 전투가 많았다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전사자들도 많았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생포성 근처에는 ‘임란공신’을 모시는 ‘창표당’(현재 창표사)이 있지만, 이름 모를 병사들, 왜적에게 짓밟힌 고향을 떠나야 했거나, 미처 떠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던 백성들의 넋은 그리움과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겠다.


“하필, 이름도 모를 들꽃들”이 피었다고 시를 시작한 것은 ‘서생포왜성’에 기록되지 못한 역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이지만, ‘들꽃’은 여전히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 울산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와 더불어 시인은 “칼날 같은 잡초가 지친 발걸음을 붙잡는다”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서생포성’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언덕을 올라야 해서 지친 발걸음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서생포성’을 오르면 임진왜란의 흔적들을 접하게 되는데, 예컨대 성벽 군데군데에 일본 사람들이 새긴 이름 같은 글자들을 볼 수 있다. 시인은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임진왜란의 아픔을 느꼈을 것 같다. 그런데 시인은 그런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 이외에 ‘잡초’나 ‘들꽃’에서 또 다른 아픔을 발견했던 것 같다. 어쩌면, ‘현재를 살아가는 민초’인 시인이 스러져간 ‘과거의 민초’와 교감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시인은 ‘서생포성’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름 모를 들꽃’을 어루만지는 ‘바람’에 주목한다. 서생포성의 들꽃은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죽어간 수많은 마을 주인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 사람들의 통곡 소리는 의미 없는 ‘침묵’에 가까울 뿐이다. 시인은 ‘바람’에게 그러한 침묵을 산 아래 넓은 바다로 옮겨 가라고 말하고 있다. ‘바람’은 들꽃을 위로하고, 한 서린 마음을 해방하는 역할을 한다.


오랜 옛날부터 울산 사람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마음의 고향이었으리라.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던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는 없지만, ‘바다’는 변함없이 울산을 품어주고 있다. 울산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겠다.


*KBS 울산 <라디오세상 울산만사> 3월 22일 방송된 내용을 수정한 것. 안타깝게도 이날 방송에서는 원고 내용의 3분의 1가량을 내보내지 못했다.


keyword
이전 01화허영미, 「바다에 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