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은 바다와 가까운 도시이다. 울주군, 북구, 동구에서 각각의 매력을 지닌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바다를 소재로 삼은 시가 여러 편 있다. 그 중에서 허영미 시인의 「바다에 살다」라는 시는 바다와 닮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물론, 독자마자 이 시에서 느끼는 점이 다르겠지만, 부족한 나로서는 그저 그 정도의 해석을 해 낼 수 있을 뿐이다.
어제는 채우고 싶어서
내일은 비우고 싶어서
긴 세월 파도에 생채기가 많은 나는 바다의 몸, 갈기갈기 찢기고 흩어져도 멍울 같은 물살 주섬주섬 주워 모아 손가락이 아리도록 다시 기워 입고 그대 앞에서는 늘 싱그런 푸른 웃음으로 신 새벽에 거듭 사는 나는 주전, 정자 어디쯤의 바다의 맘, 갈매기 주절대며 한낮을 놀다 가고나면 느슨한 출렁임에 간간이 허허로움을 씻는 저녁 빛 물든 바윗등에 실려 오는 해초의 노래자락 한 구절 의미심장한 詩, 어전마을 돌아 나오는 솔내음 배인 착한 사람들이 찾아와 외로움에 대해 긴 이야기 나누곤 하는, 31번 국도로 등 보이며 떠나간 사람도 못내 미워할 줄 모르는 백치 같고 천치 같은 동대산, 무룡산 뿌리 깊은 목항의 심성 잔잔한 바다.
허영미, 「바다에 살다」(『울산작가』6호)
이 시가 그저 바다에서의 유유자적함만 담아냈다면 큰 감동이 없을 것 같다. 이 시는 1연과 2연의 대비가 확실하다. 첫 연에서 시인은 ‘어제는 채우고 싶어서/내일은 비우고 싶어서’라고 썼는데, ‘오늘’을 기점으로 의욕 충만했던 젊은 날과 자신이 꿈꾸는 노년의 초탈한 삶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시인은 자신이 욕망을 위해서 어떻게 했다거나,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쓰지 않았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한다.
산문처럼 쓰인 2연에는 ‘나’와 ‘착한 사람들’, 그리고 ‘동대산’과 ‘무룡산’이라는 자연이 등장한다. 그리고 2연의 모든 서술은 맨 마지막에 “심성 잔잔한 바다”로 귀결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심성 잔잔한 바다’는 1연에서 시인이 말한 ‘비우고 싶은 내일’과도 연결되는 듯하다. 시인은 자신을 ‘상처투성이 바다의 몸’이라고 말하는데, 이 상처투성이의 몸을 손가락이 아리도록 기워 입고는 ‘그대 앞에서 늘 싱그러운 푸른 웃음으로’ 산다고 했다. 이 서술에는 모순이 있다.
이미 눈치 챘을 수도 있는데, 바다에는 상처가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바다에 상처가 있다 해도 큰 의미가 없다. 대부분은 바다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그래서일까? 시인은 마치 해안가에 닿으면서 부서지는 파도가 바다로 돌아가 흔적을 감추듯이, 갈기갈기 찢긴 자신의 몸 혹은 마음을 추스르고 ‘그대’ 앞에 거듭 산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독자마다 다르겠다. 자신에게 거듭 상처를 주는 ‘그대’임에도 사랑을 멈출 수 없는 것인지, 세상살이에 만신창이가 된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존재가 ‘그대’인 것인지 말이다. 그러나, 어떤 해석이라도 최근의 여성주의 입장에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듯싶다.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남자 앞에 거듭 서는 여성이나, 자신의 지친 삶을 위로해주는 남성 앞에 서는 여성의 모습 모두 긍정적으로 해석되기는 힘드니 말이다.
‘착한 사람들’의 외로움에 대한 긴 이야기는 아무래도 ‘31번 국도’를 등지고 떠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 듯하다. 좀 쉽게 생각하면, 더 좋은 일터를 찾아 떠난 젊은이들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착한 사람들’이 전하는 외로움은 과거의 바닷가 마을의 북적거림에 관한 회상이라면, 떠나간 사람들을 미워할 줄도 모르고 변함없이 서 있는 두 산은 욕심을 비워낸 마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어제는 채우고 싶어서 내일은 비우고 싶어서’라는 1연의 바람은 바다에 살면서 허무맹랑한 일이 되고 만다. 파도와 바다가 구분되지 않듯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사실은 하나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은 비움과 채움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만약 바다가 잠잠하기만을 바란다면 오히려 생명력을 잃어버리듯이, 우리 삶도 그저 평탄하기만을 바란다면 오히려 생기를 잃을 수 있을 것 같다. 상처와 사랑이 공존하고, 쓸쓸함 속에 詩가 다가오고, 떠나간 사람들을 추억하되 슬퍼하지는 않는 삶. 시인은 바다에 살면서 그렇게 비움과 채움이 공존하는 삶의 순리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울산 KBS, <라디오 세상 울산만사> 2월 22일 방송 내용을 다듬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