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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립다.

아무 일도 없는데, 눈물이 났다

by 피터팬


뭘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조용한 게 싫었다.


누군가 말하는 소리라도 들리면

덜 혼자인 기분이 들 것 같아서,

TV를 켰다.


아무 채널이나 틀어놓고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생각 없이
그저 화면만 바라보다가,
별로 웃기지도 않은 장면에서
누군가 웃는다.


그리고 화면엔
커다란 자막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배경음악도 과하게 깔린다.


무언가 억지로라도
기분을 띄우려는 연출이겠지.


그런데 나는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울컥한다.


별로 힘든 하루도 아니었고,

누구한테 상처받은 것도 아니다.


그냥...

나만 빠진 것 같은 기분.

지금 이 화면 속,

세상의 흐름에서

나만 멀어진 것 같은.


그게 문득,

목덜미를 탁 잡아챘다.


그리고 눈물이 뚝.

아무런 경고도 없이 떨어졌다.


참으려 하지도 않았고,
참을 새도 없었다.
그냥 흘러버렸다.
무심하게,
그러나 오래 남을 감정처럼.


리모컨을 들고 있었지만

채널을 넘기지 못했다.

소리만 살짝 줄였다.


별 차이 없다는 거 알면서도,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응 같았다.


문득, 전화를 걸고 싶었다.

근데 누구한테?

무슨 말을 하려고?


“나 그냥, 좀 울컥해서...”


그 말을

받아줄 사람,

지금은 없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 말 없이

혼자 앉아,

아무 일 없이 운다.




아내가 서울로 돌아간 뒤,

나는 제주에 혼자 남았다.


처음엔 괜찮을 줄 알았다.

혼자 있는 것도 곧 익숙해지겠지,

일에 집중하면 시간도 금방 가겠지,

'다음 달이면 또 보잖아'

스스로를 설득하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퇴근하고 돌아온 집은

불이 꺼져 있고,

낮에 열어둔 창문 사이로

기척 없는 공기만 스며든다.


그럴 땐

TV를 켠다.

사람 소리라도 들리면

살아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조용한 공간 속에서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제주살이에 익숙한 척,

여전히 당신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인 척,

그렇게 지낸다.


당신은 모르겠지.

내가 얼마나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견디고 있었다는 걸.


내가 얼마나 ‘당신 없는 하루’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며

아무 말 없이

버티고 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싶었는데,

말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 없는 줄 알겠지 싶기도 했다.




아무 일도 없던 날,

그냥 지나가던 평범한 저녁.


그립다.

아무 일도 없는데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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